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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바라지

낙동강 사람

by 김지숙 작가의 집

옷바라지


손이 가는 옷은 정해져 있다

살 때 마음과 입을 때 마음이 같지 않고

보기에 좋고, 입어 편한 옷은 서로 다르지만

다 해지도록 입는 옷,

몸에 꼭 맞는 옷은 늘 뒤늦게 알게 된다


널리고 널린 사람들 속에서

‘밥 먹자’ ‘얼굴 보자’ 수없이 만나 봐도

추운 세월 언 상처

다 읽어내지 못하지만 헤어지면서

다시 만날 날 잡는 아쉬움 속에서

늘 만나는 인연 속에서

낡도록 입는 옷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바라지'는 어떤 일에 대해서 돌봐주는 일을 말한다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옷장 속의 옷을 갈무리하면서 문득 그즈음에 내게 진심을 쏟은 문우에 대한 마음과 연결 지었다 어떤 단체에서 오해가 생기고 사람들이 나를 밀어낼 때에 소리 내어 나를 감싸고 변명하기 싫은 나를 대신해 오해도 풀어주면서 애써 나를 챙겨주던 사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옷과 연결되고 시심의 씨앗으로 찾아왔다

외가의 큰 이모집 제일 큰언니쯤 될까? 나이와 무관하게 솔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냥 그 마음이 고리가 되어 자연스럽게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옷을 챙겨 입으면서 어느새 너무 자연스럽고 편한 그 관계가 되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옷장에는 다양한 옷이 있다 편한 옷 예쁘지만 몸이 불어 입지 못하는 외출할 때 입고 아까워서 자주 못 입는 옷 만나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옷 등등.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이 있지만 자주 통화하고 편하게 만나는 사람 좋아하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람 만날 수밖에 없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냥 그저 그렇지만 만나야 하는 사람 등등

나의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나는 역시 어떤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순간순간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기억한다.

역지사지로 나 역시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하는 말속에서 그 마음을 읽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그래서 어떤 때에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없는 낯선 곳을 찾는다 큰 시장이나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 그곳에 서면 외롭지만 편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고 그런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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