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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발

낙동강 마을

by 김지숙 작가의 집

막사발


무진장날 국밥집

고운 구석이라고 없는 투박한 막사발에 담긴

국밥 한 그릇 가볍고 따뜻하다

다 늦은 점심상에 놓인 술사발 깊은 주름 내려앉은

안주인 얼굴은 신할아비 구박에 죽은 할미탈 같다

앞니 빠진 입가에 도드라진 부끄러움도 잠시 험난한 인생길

어깨너머 배운 회심곡 한 소절 부른다

검버섯 핀 꾸밈없는 얼굴 슬픔은 손가락 마디마디

매화 옹이처럼 맺혔고 누런 얼굴에 흐르는 이슬은 꽃으로 엉킨다


파장 거리 막사발은 문득 저 태어난 가마터가 그립다.

도공이 처음 불러준, 고운 이름 ‘상사기’ 잃어버리고

밥사발 차사발 술사발 약사발 메사발로 불린 날들이 아련하다.


저도 한 때,

어느 고승의 공양 발우로 수양하던 몸.

도공이 저를 빚으며 약속했던 오랜 사랑의 온기 거둔다.

맑은 서리 내리는 밤이면 주막집 그림자 허공에 뜨고

홀로 남은 막사발 저 태어난 가마터로 흘러드는 넉넉한 꿈길 연다.




자주는 아니지만 기분이 꿀꿀하거나 약속을 바람맞은 날 강의가 취소된 날 등은 운전도 귀찮아서 그냥 혼자서 무작정 가장 먼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타곤 했다 사람들은 빠른 지하철을 선호하지만 약속하지 않는 장소로 이동하는 날은 지하철보다는 세상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한 버스 뒷자리가 제격이다

이 시를 쓴 날도 그랬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김해로 갔다 김수로왕릉에 참배를 했다 아니 가서 따졌다 당신의 후손이 이렇게 힘들어도 되냐고 한참을 기도반 혼잣말 반을 하고 난 뒤 아무 대답도 없는 할배 무덤 앞에서 다음에 올 때는 살만하다는 말 나오게 해달라고 말하면서 돌아 나왔다

마침 회현 장날이었다 북적대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녔다 장이나 큰 시장을 별 생각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생존 현장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산 걸까 반성하게 된다

이 것 저 것 사고 싶은 것들을 보면서 실제로 사면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가 없으니 눈에 차는 물건들을 눈으로 다 사 버린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 되니 배가 고팠고 마침 장에서 멀리 떨어진 길목에 자리한 국밥집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블랙타임이라서인지 외진 집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이 집 국밥 그릇은 도자기였다 보통은 장터국밥 하면 뚝배기거나 스테인리스 그릇 일터인데. 고개를 갸웃하며 국밥 그릇을 받아 들었다


'국밥 그릇이 한번 기똥 차제이'

'특별히 담은 거야'


반쯤 술을 걸친 눈이 게슴츠레하여 옆을 둘러보니 장꾼들이 먹었을 성싶은 스테인리스 그릇들이 여기저기 식탁 위며 싱크대 안에 쌓여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그릇 씻는 아르바이트생이 떠나고 자기는 그릇 씻기가 싫어서 술 한잔 하고 있다면서 막걸리 한잔 하라며 잔을 내민다 술을 못 마시는 나로서는 한잔 따라주면서 섭섭지 않게 거절했다


'그래 막걸리 마실 양반은 아닌겨'


그래서 자기가 아끼는 그릇에 국밥을 담았다며 막사발에 국밥 한 그릇 깍두기 한 접시로 밥을 먹을 동안 할매는 혼자서 서글픈 노래를 연신 웅얼거린다 웃고 있지만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며 돌아 나오는데 빙그레 나를 바라보고 웃고 선 할매 얼굴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막사발에 국밥을 담아낸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오랫동안 생각에 들었다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귀한 막사발이 장터국밥집에 있는 것과 할매의 삶은 뭔지 모르지만 한 구석이 서로 닮아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냥 마음이 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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