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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소

by 김지숙 작가의 집

퉁소



오래된 일이다 친구집에 가면 그집 할아버지는 늘 퉁소를 불곤 하셨다 앞마당이 내려다 보이는 마루에 한복을 차려입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기다란 퉁소 위에 손가락을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불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면 퉁소소리가 났고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친구랑 놀다가 그집으로 들어가면 친구 엄마는 커다란 가마솥에 시래기 된장국을 한솥 끓이고는 김치며 나물 몇가지로 식구들대로 또 친구들은 따로 밥상을 차려 내놨다

그렇게 친구집에서 밥을 한두번 먹은 적이 있었다 된장국에 대한 맛이 우리집 입맛과는 좀 달라서 집에 와서 물어보니 엄마는 집집마다 식성이 다르고 그 집은 충청도식이라 맛이 좀 심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같은 반이고 꽤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하지만 친구는 얼마 살지 않고 중학생이 되면서 부모따라 서울로 전학을 갔다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았던 내게 친구의 부재는 가끔씩 그 집을 찾게 했다 그 집은 학교를 오갈 때마다 지나가야 했기에 지날 때마다 나는 퉁소 소리에 발길을 멈추어서 듣고 가곤 했다 그 집은 우리집보다 버스정류장 가까운 아랫쪽에 있어서 학교에 가려면 늘 지나 다녀야 하는 곳이었기도 했지만 일부러 다른 길을 가도 되는데 꼭 그 집앞을 지나다니곤 했다 친구가 보고싶은 마음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그 퉁소소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던 나의 귀에도 왠지 서글픈 애절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퉁소소리가 나면 잠깐 그 집 대문 안을 기웃거리다가 그 친구가 혹시 왔나 얼굴을 내밀어 둘러보면 할아버지는 안왔다고 손을 저어주셨다 그러면 나는 그냥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곤 했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퉁소소리와 쪽을 진 하얀 머리칼을 한 깔끔한 우리 할머니를 닮은 친구 할머니가 그 옆에 앉아서 가만히 퉁소부는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보려고 친구가 없어도 가끔씩 들러곤 했다

친구의 막내삼촌이 저녁이면 그 할아버지 곁에서 큰 소리로 신문을 읽어주고 하는 모습도 보곤 했는데 아마도 친구의 할아버지는 귀가 조금 안들렸던 모양이었다 친구집 앞을 지날 즈음이면 퉁소소리가 들리거나 신문 읽어주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친구가 있으면 친구가 조잘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퉁소소리는 들을 수 없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서울에서 친구가 와서 그 집으로 놀러갔더니 할아버지가 불던손때가 묻은 퉁소는 벽장 앞 붙박이 산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그 단정한 모습처럼 퉁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 집앞을 지날 즈음이면 나는 발을 멈춘다 신문 읽는 소리도 퉁소 소리도 친구의 깔깔대는 목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주인이 바뀌어서 대문의 색깔도 담장도 변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친구의 할아버지가 불던 그 서글펐던 퉁소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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