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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방

by 김지숙 작가의 집

만화방



언니에게 책을 선물받았던 어린시절 그 이후로 나는 밖에서 놀던 놀이터 보다는 동네 가까이 있는 만화방을 자주 찾았다 당시에는 만화방에서는 일정한 돈을 내면 읽을 수있는 만화의 권수는 정해져 있었다 단골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코묻은 국민학생 시절의 용돈은 대부분 아니 전부 만화방에 갖다 줬다

학교가 끝나면 일정한 용돈은 받아서는 바로 만화방으로 향했다 입이 짧아서 뭘 사먹는 것보다는 읽고 싶은 만화에 대부분의 용돈을 썼다 만화방에 들어서면 읽고 싶은 만화가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망설이기도 했다 명절이면 받은 용돈도 모두 만화방에 가서 다 만화보는 일로 써 버렸다 만화방 주인이 누군지 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국민학생중에서도 키가 제법 큰축에 드는 나에게 어느 날부터인기 만화방주인남자는 친절했고 만화를 공짜로 몇권을 더 봐도 된다고 했다

주인남자는 만화방에서 파는 과자도 내게 주기도 했다 그런 친절이 시작될 무렵 지극히 예민하고 그래서 살이 안찌던 나의 성격 덕분에 그 친절이 불편했다 단골이라 그랬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수 많은 만화책 안에서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만화방 주인이 싫었고 나쁜 사람 같았다 지나치게 친절한 만화방 주인의 친절이 정말 그슬렸다 나는 만화방에서 과자나 사탕은 일체 사먹지 않았다 그런데 사탕을 주고 과자를 주는 것은 당시에 입이 짧았던 내겐 많이 불편했다 만화책 몇권을 보면 덤으로 몇권을 더 읽으라는 지나친 친절은 예민한 내게 아주 부담스러웠다 돈만큼만 보는게 엄마와 정한 시간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자주 오라고 베푸는 진심어린 친절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거기서 피는 먹거리는 불량식품이라고 알고 있었고 주는 것을 한번은 받아 먹었다가 배가 아파서 더이상 사먹지 않았다 거기서 파는 먹거리를 좋아했다면 그 친절이 좋았다면 더 오랜 세월 그곳을 들락거렸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더 이상 만화방이 부담스러워졌고 거기에 가기가 싫어졌다 그 친절을 내게 베풀즈음 나는 만화방을 졸업했다 지나친 친절 이후로 나는 국민학교 졸업 시점에 일찌감치 만화를 끊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 만화방의 만화를 다 읽고 만화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덕분에 나는 차곡차곡 돈을 모아 책을 사기 시작했다 복개천 주변에 당시에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광도서에 언니를 따라 가다가 어느새 혼자가서는 단골이 되었고 소년중앙 새소년 등의 잡지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서면 영광도서는 책을 사든 아니든 서면에 가게 되면 꼭 들러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만화보다는가끔씩 웹툰을 본다 만화영화도 본다 한때는 국민학교를 다닐때 나만큼 만화를 많이 본 사람은 드물었고 덕분에 발레리나가 입은 발레복을 너무 잘 그려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서 신문사주최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만화의 세계는 나이를 불문하고 가슴을 뛰게 만드는 힘이 있고 여전히 내 맘 속에는 만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 차 있다

요즈음은 글이 많은 책이나 만화보다 글이 적게 들어간 웹툰을 더 많이 선호하게 된다 눈이 아른거리고 부담스러워 글이 많은 책을 오래 읽지 못하고 따라서 웹툰처럼 남겨진 여백의 미를 찾는 것이 더 좋다 웹툰을 즐기는 것도 어린 시절 만화를 즐기던 습관이 되살아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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