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사탕
오래전일이다 우리 집에 아랫채에 세 들어 살던 집이 있었다 그 집 식구들은 모두 부지런했다 그중에서도 그 집 엄마는 아주 몸이 빼빼하고 볼 품 없이 여위었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일했다 식구도 많았고 그다지 잘 살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그 집 엄마는 부업으로 늘 무슨 일을 하곤 했다
주로 사탕 말기였다 우리 집 옆으로 작은 도랑이 있었는데 도랑을 건너편으로 무허가 판잣집들이 산동네까지 이어져서 제법 있었고 그 판잣집 중 몇 군데가 사탕공장이었다 그곳에서 알사탕들을 잔뜩 받아와서는 비닐포장지로 돌돌 마는 수작업을 했다
포장지무게와 알사탕무게를 재서 모자라는 부분은 포장일당에서 제했기 때문에 잘못 붙어온 사탕량도 모두 떼어 가져가곤 했다 날마다 가져오는 사탕은 모양과 색이 달랐다 어떤 때는 엿모양의 땅콩이 박힌 사캉을 가져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커다란 왕사탕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엄마는 나름 인테리 여성으로 사탕은 이빨을 썩게 하고 불량식품이라고 먹지 못하게 했다 대신 대전에 출장 근무하시던 아버지께서 이따금씩 사 오시던 인삼무늬가 들어 있는 캐러멜사탕과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노르스럼하고 단단하고 투명한 빠다사탕 포장지 이름이 그랬던 기억이다 호두과자 등의 단 것을 먹곤 했다
하지만 난 그때 그렇게 색이 곱고 예쁜 사탕이 날마다 커다란 쇠판에 올려진 채로 가져오는 그 집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기만해도 신기했다 그 알사탕에 대한 호기심이 자꾸 커져만 갔다 국민학교 저학년이고 남달리 호기심이 많았던 나에게 포장되지 않은 수많은 알사탕은 정말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았던 시기였다 엄마에게 왜 우리는 사탕을 안 마냐고 했더니 엄마는 말없이 빙그레 웃곤 했다
도랑가의 공장을 들여다보면 설탕을 끓이다가 어느 정도 온도가 올라 바글거리면 그걸 식혀서 일정한 온도가 되면 엿처럼 늘이기도 하고 그냥 투명한 채로 식히면서 색을 섞기도 했다 설탕이 늘어지면서 내는 은빛처럼 비치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고 그 늘어진 것을 커다란 칼로 쓰윽 자르면 어느새 알사탕이 되어 넓다란 탁자위를 구르는 신기한 모습을 좋아했다 아이들이랑 뜀박질을 하다가도 그곳을 지나는 길이면 자주 그곳에 서서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그 집 엄마가 가져오지 않는 유일한 사탕이 옥춘이었다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옥춘사탕은 가져오지 않았고 나는 사탕공장의 열린 창문으로 친구들과 도랑 건너편에서 옥춘사탕이 만들어지는 그 신기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옥춘사탕은 옥춘당玉春糖이라고 하여 당시에는 제법 크고 납작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굳이 낱개 포장을 하지 않고 큰 포장용기에 담아 팔았다 그러니 옥춘은 따로 포장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 집 엄마는 가져오지 않았나보다
우리 집에서는 잔치나 제사로 사람들이 자주 모였고 그때마다 상에서 옥춘 사탕은 빠지지 않았다 옥사탕은 덩어리가 커서 그냥은 먹지 못하고 깨서 나눠먹는 그런 사탕이었다 쌀을 주 재료로 한 사탕이어서 인지 다른 사탕에 비하면 비싼 사탕이라 대부분은 집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상에서 보이는 음식이었다
어제는 유튜브를 보면서 옥춘 사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봤다 몇몇 공정을 제하고 나면 대부분 자동화 공정을 거쳐 옥춘이 포장되어 박스에 담기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옥춘도 예전의 그 촌스럽게 예쁜 옥춘이 아니라 크기도 모양도 색도 많이 달라졌다 아담하고 색도 더 예쁜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는 옥춘을 보면서 사람만 변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정말 볼 수도 갈 수도 없는 추억의 공간에서나 만나는 옥춘 사탕, 나의 지난날의 사탕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들이 갑자기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