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기

by 김지숙 작가의 집

빙수기




아주 오래된 여름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문방구 앞에는 빙수기에 빨간 물감 노랑 물감을 얹고 설탕을 한 숟갈 팥 조금을 넣어서 팔았다 그때는 커다란 얼음이 갈려 눈처럼 하얀 얼름이 나오는 빙수기가 신기하여 너도 나도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누구라도 아는 사람이 그 얼음을 사는 날이면 아이들은 한입이라도 먹기 위해 그 아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위생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어지간한 것은 지금의 위생 수준에서 보면 불결하기 그지없는 불량식품이었지만 당시에는 없어서 못 먹는 아이들의 여름 최애 식품이었다

어름이 갈려 나온 그릇에 노란 물감을 부어 주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 예뻐서 먹기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사실 맛이라 설탕과 약간의 팥알갱이 정도였으니 얼음의 시원한 맛 외에는 그다지 기대할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얼음을 한 그릇 사면 주변에 아이들이 득실거렸고 너도 나도 한 입만 달라는 아우성에 금방 동이 나곤 했다

그리고 조금 많이 먹은 날은 설사를 했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해도 빙수를 먹은 날은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밥을 못 먹으니 당연히 들키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얼음이 갈려 나오는 곳에 빨간 물과 노란 물을 뿌려주는 것이 너무 예쁘고 좋아서 그 유혹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보다 못한 엄마는 깡통시장에서 미니 빙수기를 사 왔고 집에서 얼음을 갈아서 팥을 듬뿍 넣은 빙수를 만들어 주곤 하셨다 그런데 내게는 팥을 듬뿍 넣은 빙수보다는 빨간색 노란색 색깔이 아주 마음에 드는 그 문방구집 빙수가 더 좋았다 여름이 다 가도록 나는 그 빙수집 단골이 되어 그 집 빙수를 먹곤 했다 여전히 배앓이를 했고 나중에는 배가 아파서 병원에를 가야했고 더 이상 빙수를 찾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빙수철이 되면 빙수를 찾는다 팥이 듬뿍 들어가거나 진화된 모양의 다양한 빙수들이 천태만상으로 여름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어린 날 문방구에서 팔던 불량식품 빙수는 어디에도 없다 빨갛고 노란 물이 올라가면 하얗게 갈린 얼음을 따라 색이 번지는 그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불량식품이어서 인공색소이니까 지금 수준에는 없는게 당연하다 그만큼 식생활 수준이 높아졌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그 색깔들이 얼음사이로 번지는 모습이 신기했고 좋았다 여전히 여름이 돌아오면 이제는 찾을 수도 없는 옛날 그 빙수와 빙수기를 생각하게 되고 그런 빙수집 어디 없나 하면서 학교 앞을 지나면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추억의 빙수가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일까

keyword
이전 04화양철지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