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장점
참 오랜만에 입에 올려 보는 단어이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딱히 양장점이라 할 곳은 없었고 집안에서 친구 엄마가 하는 곳이 전부였다 친구 엄마는 어디서 양재기술을 배웠는지는 몰라도 곧잘 옷을 만들었고 아이들의 입학식날에는 날밤을 새우며 주문받은 옷을 만들어도 다 못 만들어서 보조를 둘만큼 잘 되었다
솜씨도 솜씨지만 색상을 고르는 눈썰미가 좋아서 다들 이 집에서 사사로 옷을 만들어 입곤 했다 친구 엄마의 솜씨도 좋았지만 항상 단아한 외모에 세련된 옷을 입고 있어 이웃 아주머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교복을 맞추기도 하고 명절이면 한복을 대신하는 새 옷들을 맞춰 입곤 했다
당시에는 과외가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과외를 많이 받으면 일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던 시절이었다 물론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는 중학교 입시가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류고등학교 일류대학을 넣는 것이 엄마의 능력으로 순 꼽히던 때였다
양장점을 하던 친구 엄마는 공무원의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돈으로 자녀 셋을 일류 과외선생을 붙여서 공부를 시켰다 당시만 해도 그 집아이들이 특별히 머리가 좋거나 공부를 잘 한다거나 공부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엇지만 그집 엄마의 치맛바람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집 아이들도 평범했지만 과외를 하고부터는 성적이 달라졌다 내 친구는 국민학교를 끝으로 나와는 다른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기에 잘 만나지 못했다
이 친구 엄마는 옷을 만들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빌렸다 그런데 아무도 돈을 빌려줬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다소 높은 이자를 받는 기쁨으로 쉬쉬하면서 돈을 빌려주었고 그 엄마는 그 돈으로 세 자녀를 일류 과외교사를 썼다
괴일 하나도 제손으로 깍아 먹을 줄 모른다는 자랑을 하던 그 집 아이들은 남들 보기에는 잘 먹고 잘 살더니 어느 날 문득 막내가 고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서울로 야반도주를 했다 보통 야반도주를 하면 입을거리나 먹을거리정도만 챙기고 달아나기 일쑤인데 이 집은 아예 통째로 이사를 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았다 집도 은행에 넘어갔는지 집달리가 달려들었고 알고 보니 동네사람들 중에서 이 집에 돈을 빌려주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 엄마도 마찬가지였고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면서 4남매를 힘들게 키우던 순이네는 가장 많은 돈을 떼였다 순이 언니가 고무신 공장에서 번 돈 아랫체 아주머니가 사탕을 싸서 벌던 돈 그 집 아저씨가 아픈 몸으로 힘들게 번돈을 한꺼번에 다 떼어먹고 도망을 갔다
친구 아버지의 직장을 찾아갔으나 이미 서류상 이혼을 한 상태라 아무런 대책을 찾지 못했다 이미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진행한 계획적인 도피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의 울음소리로 동네는 집집마다 허탈허탈의 바다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남의 피같은 돈을 빌려 키운 자식들이 셋 모두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켰고 좋은 직업을 택해서 셋 모두 절 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건너 건너로 소식을 알게 된 사람들은 서울로 찾아갔지만 의사를 하는 딸은 매몰차게 빚쟁이들을 내몰아 붙였고 증거하나 없이 심정적 빚쟁이라는 죄목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사람들은 어이없어하며 돌아 나왔다고 한다
돈을 빌려줬다는 증거로 종이 한 장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엄마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돈을 빌려서 도망갈 준비를 한 게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치밀하게 동네사람들의 돈을 빌렸고 단아한 척 고상한 척하면서 머리 회전이 빨랐던 그 집 엄마는 실속을 차렸다
다른 사람들의 돈도 다 귀한 돈이지만 고무상하던 아재집 고무신 공장 다니며 번 순이 언니 돈 사탕을 수천 개를 싸서 번 돈 남의 집 지붕을 고치겠다고 뜨거운 양철 지붕 위를 돌아다니며 번 돈 더랑가 할머니가 마늘까서 번돈을 한입에 꿀꺽하고 자기 자식들의 앞길을 닦은 것은 정말 옳은 일일까
나는 지금도 그들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울엄마도 우리 남매가 과외 할 돈 그 이상을 떼였다 엄마는 몇날며칠을 앓고 누우시더니 털고 일어나서는 <내가 전쟁에 그 사람들 돈을 떼먹었나 보지>라고 속 편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사고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서울로 찾아가지 않은 것은 그간의 의리로 치부하는 듯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끔씩 출세해서 잘 사는 친구의 소문을 들을 때면 과연 그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기 엄마의 잘못만이라고 치부하고 용서할 일인가 우리에게 용서받을 생각도 없이 저들끼리 잘 먹고 잘 사는 저들의 삶은 행복할까 많은 사람들의 피땀을 등쳐 먹고 덕분에 신분상승을 한 그들에 대해 그나마 국민학교시절 가장 친했던? 그 친구에 대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반가운 마음으로 만날 용기는 없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