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집
내가 살던 동네에는 시장이 조금 멀어서인지 집안에서 소일거리로 이불점을 하던 집이 있었다 그 집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우고 있었으며 이불을 주로 취급하던 만큼 속이 넓은 사람이었다 네 것 내 것이 없이 그 집 찬장이나 밥솥은 동네사람들의 공유물이었고 뭐든 나누고 퍼주는 아주 인심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와는 동갑이 없었지만 언니오빠와 동갑인 아이들이 있어서인지 엄마가 자주 가는 곳이라 학교가 끝난 뒤 엄마를 찾으러 한번씩 가곤 했다 내가 가면 이 아주머니는 정말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어주면서 맛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주곤 했다 나분 아니라 자기집 대문간에 발을 디디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그랬다 그러면서 내게는 옹니라며 놀리는 것을 좋아했다 이빨을 갈기 전 유치를 지녔을 무렵 나는 옹니였다 아니 기억에는 없는데 그 아줌마가 놀리던 생각만 늘 난다 그러면서 내게 유치를 갈면 밖으로 혀로 자꾸 앞니를 밀어내야 옹니가 안된다고 만날 때마다 말을 했다 엄마는 말없이 그 말에 웃기만 했다 어린 나는 옹니가 나쁜 것인 줄 알고 그 아주머니가 말한 대로 혀끝으로 자주 앞니를 밀어냈다
그 결과인지 나는 지금은 앞니가 조금 튀어나왔다 어린 시절 그 아주머니의 말을 참말로 듣고 스스로 자가 교정을 한 셈이다 그냥 두었으면 오히려 옹니로 살아남았을 텐데
그 이불집 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은 만큼 웃음소리도 컸다 대문을 들어서기 전에 벌써 그 유쾌하고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남들에게 잘 하느라고 자식들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문에 좋은 학교를 나오지도 못했고 좋은 직업을 갖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집 아이들은 얌체같이 문을 걸어 잠그고 은밀하게 남의 돈을 빌려 자기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동네 양장점 아주머니의 아이들과는 정반대로 성장했다 사교성이 뛰어나고 여전히 밝은 성품으로 살아간다 자기 실속도 없이 퍼주고 외상 주고 가난한 이웃집 딸아이 시집갈 때 이불도 공짜로 해 주고 하던 이불집 아주머니의 삶이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 같다 물질 적으로 그다지 잘 사는 지는 모르겠다
그들의 대조적인 삶을 보면서 나는 과연 어떤 삶이 좋은 삶이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풍요로운 물질이 우선되기 때문에 그에 부합되는 경제여건이 훨씬 더 나을 수 있다 점점 사라지는 추억 속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