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달력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율리우스력에 기원을 둔다 이전의 로마시대는 계절의 순환을 맞추는 태음력을 사용하였고 윤달산정이 어려워 불편과 혼란을 야기했는데 율리우스 카이저는 고대 이집트 태양력을 도입하여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다 이후 130년마다 하루씩 늘어나는 오차를 바로잡은 그레고리력이 세계의 달력으로 발전한다 18세기말 자코뱅은 전통기독교 타파를 위해 달력을 전면 개정했으나 성공하지 못하는 달력에 관한 혁명은 지속적으로 나라별로 있어 왔다
오늘 아침 식구들의 기념일을 챙기려 달력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올해도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든다 책상 위에 놓인 달력에는 올 한 해 동안 일어난 대소사가 적혀 있고 나는 지나온 날들에 잠깐 숙연하다 감사한 일이다 올해처럼 늘 봄날처럼 앞으로의 날들이 순했으면 좋겠다 앙앙 대는 세상을 떠나 맑고 조용하고 순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소망을 꿈꾸고 평온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새해 첫날도 아닌데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 일을 다 아는 것이 달력인 것처럼 달력을 바라보면서 달력에게 말을 건다 세상사람들의 모든 기록과 앞으로의 기록들을 다 아는 달력의 절대적인 존재감
무언가를 대신한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거나 보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달력은 마치 기억을 되새기는 기억의 통역사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월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능력자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 말을 모르면 통역사가 필요하고 주어진 장면이나 대화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설자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로 순간 잊고 지나갈 수도 있는 기억들을 되새기게 하는 기술자이다
내 인생의 나날들이 눈에 보이라고 달력이 저렇게 숫자를 늘어놓고 내 앞에 딱 버티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잘 살아내고 있는지 낱낱의 지나온 순간 지나갈 순간 남은 순간들을 숫자로 표기해 놓고 있다 지나온 순간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날들의 감정이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을 보면서 그날들에 대한 감정들을 준비한다
달력이 눈앞에 마련한 준비감을 따라올 것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마다 달력을 준비하고 책상 위에든 벽이든 달력을 건다 디지털의 세상에서 폰 속에 있는 달력보다는 그래도 눈앞에 보이는 달력을 더 선호하는 것은 달력 속에 지나온 날들과 지나갈 날들이 한 공간에 놓여 있어 마음만 먹으면 만나기 편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머릿속에서 달력 위의 숫자가 한 칸을 넘어간다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는 달력은 그 존재가 절대적인 점은 변함이 없다 달력의 힘은 달력이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 흘러가는 것은 사실 달력이 아니고 세월이고 시간이지만 우리는 달력이라는 한정된 1년이라는 기한을 두고 세월을 산정한다 그리고 인생도 그 달력으로 산정된 계산법으로 말하고 맞고 보낸다
어쩌면 달력이 기준이 된 생을 살다가 가는 셈인지도 모른다 달력은 정치 문화 등과 어울려 지배층들의 임의대로 들쭉날쭉한 적도 있다 권력자들의 용도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달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일생은 끊임없이 나타나는 달력에 의해 좌지우지당하고 살아왔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달력이 곧 생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