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뫼마을
6월의 마을길 둘레둘레 걷다 보면 어느 듯 굵고 묵직한 강을 만난다
강의 첫 자락에 앉은 회문산은 밤꽃 천지, 슬픔이 만 가닥으로 잘라져
허연 머리 풀어헤친 상여줄 마냥 온 산을 치러럭 덕치리럭 흩감았다
625 토벌로 죽은 사내들 억울함은
저렇게 몇 산을 뒤흔들며 어둠의 그늘을 짓는구나
어쭙잖은 향기는 하늘도 강도 땅도 미련 없이 다 뒤덮는구나
밤꽃은 때로는 밤의 꽃이 되어 밤잠 설친 여인의 밤을 다 까먹을 성싶지만
그게 아니다 전쟁의 생채기 입은 남정네 들 혼이 이맘때면 떼창을 하는구나
샛바람도 받쳐 든 그 지독한 내음
내사 하나도 좋은 줄 모르겠는데
허연 머리칼 휘날리는 노시인들은 거듭 탄복한다
‘저렇게 많은 밤꽃은 평생에 첨이다’
속 모르는 그 목소리는
‘부럽다 부럽다 참말 니가 부럽다’ 그렇게 들린다
제사상 물린 날 이 밤
하동 여인네의 불면은 그게 아닌데 참말 그게 아닌데
5월 말에서 6월 초가 되면 하동 일대의 밤산에는 밤꽃이 무성하다 등산을 자주 하지 않아서인지 솔직히 밤꽃이 무더기로 피는 모습은 아마도 그즈음 처음 본 것 같다 어떻게 밤은 둥근데 밤꽃은 길게 늘어지지 참 이상하다 싶었다 밤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고 길게 늘어진 수꽃은 스퍼민이라는 물질을 내놓고 이는 곤충들을 유혹하는 용도로 쓰인다
시를 쓰는 일행들과 하동을 지나면서 밤나무꽃이 활짝 핀 모습들을 보고는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동 하면 매화가 많고 길거리에서도 매화나무와 꽃 열매들을 자주 봤지만 밤산을 가까이서 보고 밤꽃 냄새를 맡기는 이렇게 진하게 처음이다 다들 감탄을 했다 뒷자리에 앉은 나는 냄새가 지독해 견디기 힘들어 슬며시 차의 창문을 닫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활짝 열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들 이 냄새에 대해 한 마디씩을 한다 나는 이 마을이 진뫼마을이고 그 마을에 엮인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그에 대한 내용은 아랑곳없이 밤꽃의 열정에 대해 열을 올린다 가만히 입을 닫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다가 나의 머릿속은 어느새 진뫼마을 젊은이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그날의 순간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야기 보다 더한 현실을 때로는 외면한다 그리고는 꾸며진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믿기 쉽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 때로는 입을 다물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 더 편할 때가 있다 진뫼마을 앞을 지나면서 밤꽃냄새를 맡으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다 그리고는 그들의 마음을 쏟아내는 말들이 밤꽃냄새만큼이나 거북하기도 하다 밤꽃냄새에 대한 또 다른 기억들이 덧입혀진 순간들을 시 한편으로 마무리하며 건너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