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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야학

by 김지숙 작가의 집

샛별야학




교사 호주머니 털고 시지원금 더해 꾸린 천막교실

평생 까막눈으로 살다가

제 이름 쓰고파서 찾아온 끝순 할매

어린 시절 연필 침 발라 꼭꼭 눌러

사박대며 글 쓰던 주인집 아들 부러웠던 왕씨 아재

선뜩 지나간 일 되새기며

모나미 153 볼펜으로 또랑또랑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어깨너머에서 배운 글자

어느새 제 이름 친구이름 다 써내려간다

무식하다 못 났다 수없이 맞고 산 지난 세월

꼬불탕꼬불탕 한을 풀어 이름 쓰고

뒤늦게 종이 위에 사물 불러 시인이 된

까막눈 영순 할매의 소중한 배움터



샛별야학은 북구덕포동에 있는 평생학습교육기관이다 안창호선생의 무실역행務實力行정신을 이어받아 사상공단에 서 배움의 기회를 잃은 이들을 위해 1982년 지역공부방들이 통합하여 모라동 천막교실로 발족되었고 이후 모라 감전 덕포 등지로 이전하면서 중고등반으로 운영되어 왔다 한글반과 초중고등 반이 있으며 지금은 덕포초등 옆 아가페 회관4층에 이전하여 검정고시반 등 5개의 반으로 총 70여명의 재학생과 20-60대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비영리단체로 수업시간은 저녁 6시 30분부터 10시 5분까지 주말과 공휴일 수없으로 이루어진다

샛별야학에서 한글을 깨우친 80이 가까운 한 할머니에게 시창작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 할머니의 삶은 쓰면 시가 되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가슴 깊이 사무쳐 있던 일들을 무심한 듯 쏟아내는 그 이유들이 그 삶이 내게는 너무 신선한 충격적인고 진솔한 시로 와 닿았다 사상공단이 있던 시절 샛별야학은 부산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모나미 볼펜이 1960년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연필이 가장 가격이 쌌고 당시 모나미 볼펜은 새로운 필기구로 등극한 신제품이었다

그 할머니는 모나미 볼펜으로 글을 쓰던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언제나 모나미 볼펜 153을 필통에 꼭 넣고 다니고 그 볼펜으로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여 제출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시를 쓰고 공동시집을 내고 하면서 내내 행복해 했고 자기의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이라며 환한 모습을 모여준 할머니는 잘 지낼 줄 알았는데 그 할머니의 삶은 여전히 무식하다는 이유가 아니라 또 다른 이유로 맞고 멍이 든 얼굴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 일로 사람들이 매를 맞고 때리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 배우고 미처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오갔고 마음이 복잡했다 멀리서 듣기로는 할머니를 때리던 그 손버릇이 고약하던 할아버지는 요양원으로 들어갔고 할머니는 자식의 집으로 들어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더 좋은 시들을 스고 있으면 좋겠다

공리공론을 배척하고 참되고 성실하게 힘써 행하지는 務實力行의 삶은 누구에게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렇기에 더욱 힘쓸 일이 바로 이 일이 아닐까 누구나 현재의 자신의 삶에서 깨어나 자신을 둘러 볼 필요가 있다 그 속에 살아가면서는 힘이 들기 조금 떨어진 채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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