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빼이 아재
해거름이 뒤덮을 즈음
골목을 뒤흔들며 나타나서는
아무 소리나 중얼거리고는
한 자리에 서서 온종일 온몸 흔들며
매욱한 술주정꾼 낯 모르는 아재
허분허분 딴 남자 만나 새살림 차린
앞집 여자 찾아왔다고도 하고
온 재산 몽땅 날린 왕년에 이 동네 살던
가마 말쑥 부잣집 샌님이라고도 하고
전쟁통에 팔 하나 잃은 울분이라고도
하지만 단 한 번도 맨 정신으로
골목에 든 적 없어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초빼이 아재의 비밀
초빼이는 경상도에서는 술주정꾼 술꾼을 사용하는 사투리이다 초병醋甁을 초빼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말은 욕 같다 욕은 아니지만 욕으로 들리는 이유는 초빼이들이 술을 마시고 그 취기로 행하는 일들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초빼이들은 막걸리를 마신다 많이 마시면 술기운과 함께 속에서 올라오는 냄새들이 근처만 지나가도 지독했다 물론 담배도 마찬가지이다 젊고 건강한 경우에는 그 냄새가 덜 하지만 나이가 들고 건강하지 않을 경우에는 좋은 냄새는 나지 않는다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알코올분해 능력에 차이가 난다 술을 한잔만 먹어도 맥박이 빨라지고 숨을 못 쉬고 응급실로 가는 경우도 있고 말술을 마시고도 몇 시간 후 음주측정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내가 살던 어느 동네에서는 젊은 새댁이 새벽마다 꼭 작은 가게 앞에서 혼자 막걸리 두 병을 마시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이사를 와서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이 일은 몇 년을 계속되었다 이 사람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어린 시절 동네 입구에 새벽이면 친구 집 앞에서 노숙차림으로 출근하여 해가 지도록 술기운을 풍기며 몸을 흔들어대던 초빼이 아재가 생각났다
얼마나 사는 일이 힘이 들고 벗어나기 어려우면 저런 것일까 어린 마음에도 다들 걱정을 했던 기억이다 친구 집 앞이라 그 친구 집에 가기가 겁도 나고 누구냐고 묻기도 했지만 친구는 먼 친척이라고만 했다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초빼이 아재들은 이곳저곳에서 구석구석에서 더러 있었다
대학 다닐 때에 학교 캠퍼스에도 있었다 청테이프를 이마에 붙이고 아침이면 운동장 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하루종일 앉았다가 해가지면 떠나가는 5 공화국 시대에 고문당하고 정신줄을 놓은 학생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외팔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누구 때문에 내 팔이 이렇게 됐냐면서 전쟁통에 잃어버린 외팔이 아저씨가 갈고리 의족을 휘두르며 물건을 파며 안사면 울부짖던 동네 아재도 있었다
어쩌면 한국전쟁과 5 공화국시대를 거쳐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아런 저런 일들로 혹은 어렵고 힘든 가족사로 개인사로 극복하지 못할 만큼의 고통들을 겪는 이들이 있었고 죽지도 못할 만큼 고통을 겪고 살아가는 희생자들의 모습도 있었다
그래도 가장 오래 가장 충격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이 바로 초빼이 아재다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 도 하굣길에 꼭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지금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이전이라도 이런 사람들은 민원을 넣으면 다 해결되지만 그때만 해도 전후 얼마되지 않았던 시기라서 인지 사람들에게는 그런 미움도 또 그런 해결책도 없었다 초빼이 아재의 출퇴근은 우리 동네 미스터리는 모두에게 궁금했지만 아무도 일지 못하는 일이었고 일부 인정 많은 사람들은 초빼이 아제가 굶어 죽을까 봐서 막걸리 물 밥을 은근슬쩍 초빼이 아재 옆에 두고 가기도 했다
가장 안타까워하던 점은 추운 한겨울에도 전혀 따뜻하지도 않은 여름옷을 입고 서서는 추우니까 온몸을 흔들면서 제자리에 서 있곤 했는데 동네사람들이 옷을 입혀줘서 그나마 버티는 것 같더니 결국은 어느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어찌 되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는 방법은 다양하다 고통은 끝날 때까지 마주하고 길들이며 살아남는 법을 택해야 하는데, 고통에 집어삼키거나 고통에 주눅 들면서 그 고통에서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경우도 본 게 된다 고통을 견디는 능력은 사람마다 당면한 일마다 다르고 한계점에 도달하는 정도도 다르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힘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 힘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누구나 쉽게 처음부터 고통을 긍정화하는 훈련이나 견디는 힘을 가지거나 기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를 설득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못된 점을 시각화하여 버리려는 노력을 하거나 미리 고통을 예상하면서 견디기도 하지만 이 역시 사람인 이상 쉽지 않고 쉽게 고통이 줄지도 않는다
일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부족 빈곤 등에서 비롯된 고통은 채워져야만 벗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짐 육체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 고통에 직면하면 분노 불안 공포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좀 떨어져서 고통울 바라보고 그 고통을 충분히 느끼고 수용하고 그 고통이 주는 의미를 찾아 나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은 참 쉽다 그게 되냐고 그렇다
쉽지 않지만 고통을 주는 마음과 원인 등과 지금 그 고통을 느끼는 자신을 구분하여 고통을 대한다면 일단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기만 한다면 고통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객관화하여 바라보게 되는 데 이는 고통의 상황 부위 내용 등에 따라서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 인간의 포악함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 폭군을 만들기도 모든 경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성자를 만들기도 한다 그게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고통을 겪어본 사람으로서의 내가 갖게 된 생각이다 정말 아무런 다른 방법이 없다면 정신적 문제라면 잊기 위해 노력하고 물리적인 문제라면 그냥 지나가기를 빨리 지나가기를 마음을 비우고 바랄 뿐이다 고통의 시간은 길고 느리지만 그래도 시간은 자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이 깊을수록 그 고통을 제대로 잘 보낸다면 환희의 시간도 머잖았다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