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부산 고무신 공장 모르면 간첩아이가’
대여섯 집 건너 한 집에서
국제화학 왕자표 태화고무 범표 동양고무 기차표
고무신 공장으로 출근하던 때 하얀 얼굴이 얽은
아랫방 세 들어 살던 순이 언니
이른 겨울 아침
집 앞에서 통근 버스 기다린다
월급날 퇴근길 월급 대신 받아온
언 손에 들려있는 폭이 넓고 굽이 낮은
갖신 몰캉한 덮개가 반만 덮인 고무신
울이 깊고 코가 작은 가죽신을 본뜬
알록달록 코가 말짱한 색동 고무신 명절이면
아랫집 툇마루에 나란히 고무신들이 앉아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가 살던 집에는 더러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식구가 살다가 할머니 고모 삼촌이 집을 얻어 나가고 삼촌이 장가가고 고모도 시집가는 등의 집안의 대소사가 몇 차례레 지나고 나면서 방이 하나씩 둘씩 비었고 그 방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를 오곤 했다
우리 가족들은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방한칸을 차지하지는 못하던 때였다 아랫방에는 정말 좁은 곳이었는데 그곳에 여섯 식구가 이사를 들었지 처음에는 엄마는 식구가 많다고 고개를 갸웃댔지만 워낙 사람들이 순하고 착하고 이웃에 살던 아는 사람이라 그냥 들였다
아이들의 나이는 우리 집과 비슷비슷했고 동갑이나 한두 살 아래위라 친구처럼 언니누나 오빠 동생처럼 묵적이며 지냈다 놀이할 때에도 언제나 같이 놀았다 문밖만 나서면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집에 사는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바로 고구신 공장으로 갔다 너무 착하고 마음씨가 비단결이었지만 얼굴이 얽어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다
이른 아침에 동네 언니들은 학교를 가느라고 바쁘고 그 언니는 고무신 공장 가는 버스를 기다리느라고 골목 입구에 서 있곤 했다 명절 즈음이면 양손에 고무신을 들고서 통근 버스에서 내리기도 했다 명절이라 보너스로 받은 줄 알지만 그게 아니라 밀린 월급 대신 받은 고무신이라 그 고무신을 동네 사람들에게 팔기도 하고 나누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언니가 힘들게 일한 대가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받지는 않았다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냥 궁금한다는 것이다 잘 살고 있는지 여전히 착하기만 한 건지 건강한 건지 친구의 언니이지만 내게는 늘 따뜻했다 맛있는 떡볶이도 해주고 라면도 끓여주곤 했다
아마도 본인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잘해 주려고 해서 내게 한 행동들을 특별히 기억하지 못하는 일일 테지만 난 기억한다 그냥 느껴지는 따뜻함이 추운 날이면 더 잊히지 않는다 오대산입구 상점에서 고무신을 봤다 색깔이 다른 고무신을 보면서 느닷없이 순이 언니가 떠올랐고 그때의 순간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겐 눈물 나게 따뜻한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