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너모 고개
부산 울산 국도 만들고 부산진 동래 전차길 만들 때
동해남부선 부설에 해방 전 포장할 때
4번 깎은 비마치 고개
말을 타면 날듯 달려 넘는 말 고개
가파르고 험한 울창한 숲 가로질러
미천한 갯가 사람 양반동네 못 가고
호랑이 나타나 무서워서 못 넘고
벼랑길 높아 못 넘는 모너머 고개
어린 날 친구 손잡고 쑥 캐러 구렁고개 넘던
길 깎인 벼랑길 내려다보며 맘 졸이며
수없이 미끄러지며 뛰놀던 추억이 담긴 고갯길
세월 흐른 지금 돌아보니
모너머 고갯길은 어디인지 간 곳 없이
평평 탄탄 다 깎여
이름도 길도 사라져 이제 정말 넘고 싶어도
못 찾아서 못 넘는 모너머 고개
학교를 주변으로 이 모너모 고개가 있었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가끔씩 이 길을 건너곤 했지만 별다른 기억으로 이 고개를 넘어 다닌 적은 없다 하지만 이 모너머 고개를 매일 오가며 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을 따라서 그 언저리까지는 수도 없이 여러번 다녔다 모너머고개에는 작은 교회도 있었다
모너머고개에 사는 친구가 교회를 다녔는데 내게 전도를 한다고 하루종일 붙어있어서 정말 학을 떼고 한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국민학교 3-4학년 즈음 잠깐 짝지를 했지만 전혀 친하지는 않았다 일주일마다 짝꿍이 바뀌었기 때문에 짝꿍으로 잠깐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도 지긋지긋하게 문 앞에 붙어서서는 꼼짝도 하지도 않고 밥 먹으러도 가지 않고 나를 교회 여름성경학교 데려가겠다고 진종일 집 현관문 앞에 붙어 서서는 사람을 정말 힘들게 했고 엄마나 할머니는 밥먹여 보내려고 해도 가지 않았고 어서 집에 보내라는 채근하는 말을 듣곤 했다
엄마는 교회는 다니면 안된다고 했고 나도 정말 가기 싫었다 그 아이의 진득함이 싫어서 할 수 없이 그 아이랑 같이 교회에 갔다 그 친구는 나의 속도 모르고 신바람이 나서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젊은 목사 앞으로 가서 당당하게 말했다 친구를 내보내고 난 뒤에 나는
<엄마 할머니 집안 대대로 절에 다니 잡인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데 친구가 워낙 하루종일 집에서 가지 않으니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냐고 그게 종교가 할일이냐>고 일단은 이 일을 해결하러 왔다고 어린 내가 한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조리 있게 불만을 섞어서 말을 하고 난 내게 똑 부러진다는 생각을 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모너머 고개에 있던 그 교회에서는 이후 내게 교회 오라는 말도 그 친구도 더 이상 우리 집 앞에 서성이지 않았고 나는 덕분에 교회에 대한 나쁜 인상은 더 이상 갖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지겨우리만큼 무지막지하게 나를 교회 데리러 가려던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강한 집념으로 버틴 이유는 친구 몇 명을 성경학교에 데리가면 상으로 빨간 등가방을 받았고 그럴 학교에 메고 와서는 자랑하기도 했다 무슨 인연인지 그 친구와 중학교 고등학교도 같은 반 같은 학교를 여러번 하며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거리를 두어서인지 그냥 눈인사만 하는 정도로 왠지 모를 거리감으로 더이상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다
어른이 되고 우연한 기회에 그 아이의 소식을 듣고 연락이 닿았는데, 그 지긋지긋한 일에 대해서는 아주 기억조차 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겉보기에는 너무도 잘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그 교회에 다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끈기와 지독한 집념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전혀 개의치 않는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아이라면 그 어린 나이에도 그랬는데 나이 들어서야 오죽 그런 정신으로 살아왔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지키는 그 자리도 그런 자기이익을 위해 일관된 집념으로 굿굿이 잘 지켜 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다시 정신이 차려지고 조금 더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어린 날의 모너머 고개를 생각하면 그 아이와 얽힌 기억들이 들고 일어난다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지만 불현듯 이 고개를 지나는 길에 불현듯 되살아났다 요즘은 고개가 아니라 그저 살짝 높은 언덕도 못 되는 길로 바뀌었고 꽤 큰 아파트 단지가 생로 생기고 길도 변했다
그 아이는 분명 그 아이의 부모님이 지닌 특성을 이어받았을 것이고 여전히 집안의 내력으로 대물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성격을 바뀌지 않고 또 그 성격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한 집안의 대표적인 성격이 유독 들어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대표하는 인물도 있다 태어난 순서가 갖는 성격 특성도 있고 남녀 특성 그리고 부모에 의해 양육되었는지 할머니에 의해 혹은 기관에 의해 양육되었는지 대가족 속에서 여러 형제 간 경쟁하며 혹은 우애를 독독하게 하며 그 사이에서 양육되었는지에 따라서 다른 성격적 특성을 드러 낸다
어쩌면 사람의 심리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검은 돌덩이를 삼킨 것 같은 그 아이의 집념을 보면서였으리라 저 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욕심이라면 그 욕심은 어떻게 자기 이익만을 위해 발현되는 것일까 등등의 생각을 너무 이른 나이에 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그 아이는 사람을 자기 목적 달성을 이루기 위한 도구화하는 법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줄곧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그 아이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시작되었으리라 나와는 너무도 다른 그 아이를 떨어져서 바라보면서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부터 잠재적으로 사람의 심리와 내적인 욕망을 관찰하는 작업은 시작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런 사람이 끔찍하다 살면 돌이켜 보면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 그런데 류의 사람들이 유독 나의 주변에는 진을 치고 있거나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그런 사람은 멀리 하려고 해도 잘 떠나가지 않는다 여전히 좋아 보이는 먹거리이기 때문일까 아니 현대인의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당연지사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가까이 있고 싶어도 삶의 형편상 멀리 살지만 가끔씩 통화만 해도 여전히 따뜻하다 사람의 마음에도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어가 보면 상대의 마음 속에 나 있는 길의 상태가 느껴진다 자기 마음대로 상대를 개의치 않고 주도하고 자기가 갈길을 함께 끌고 가는 나르시시스트 같은 류의 사람을 만나면 그 기간 동안은 빠져나오거나 대책을 세우느라 참 힘들다 그래도 그 아이 덕분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한번씩은 건강한지 점검을 한다 그래서 과하다 싶으면 그런 관계를 청산하고 좋은 관계는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물리적인 거리는 때로는 참 편리하다 사람의 관계를 되짚어보고 정리하고 청산하고 다시 잇거나 돈독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18장 22-23절에 의인 한사람만 찾아도 예루살렘성을 용서하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끔씩 만나도 기분 좋고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친구들이 이 추운 날이면 더 생각난다 그래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고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들 의인 덕분은 아닐까 문제는 착한 마음을 이용하고 이들에 묻어 자기죄를 덮고 살아가는 욕심쟁이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정죄하지도 구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깊은 뜻은 하늘에 있다고 믿는다 무릇 사람이라면 착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도덕교과서적인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인간의 종류가 층층만층구만층이니 그냥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나름의 순간 대처를 잘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다만 더이상 욕심쟁이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