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 완당
맑은 물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
하늘대는 새하얀 선녀옷인가
阮堂이 그린 세한도에 내린 흰 눈인가
왼쪽 잣나무 두 그루 옆으로
초가집 꼿꼿한 소나무 두 그루
까실한 유배생활 드러나는 갈필 그림
겨울이 되어서야
잣나무와 소나무의 푸름
선비상 세한도 되돌아온 날
해물 육수 깔끔함을 후루룩 마시듯
작은 구름 한송이 삼키면
후루룩 목 넘김으로 쓰린 속 달래는
세상 부드러운 구름의 맛 운탄雲呑
부산사람이라면 18번 완당집을 모를 리 없다 오래 부산에서 살아왔다면 한 번쯤은 18번 완당집을 거쳐갔을 것이다 한 때는 광복동 남포동이 부산 최대의 상권이었다 그리고 서면에서 부산대 앞으로 해운대 광안리 신도시로 옮겨가면서 지금은 상권이 각 지역 중심으로 어디든 적당히 잘 조성되어 굳이 다른 상권으로 가지 않아도 될만큼 다 있다 어쩌면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혹은 인터넷상으로 새로운 상권이 하나씩 생겨난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말의 중심은 완당에 있다 완당은 중국의 완탐으로 불리던 음식이 일본으로 건너가 닭고기를 넣어 만들면서 일본식 명칭을 완탕으로 변했고 이은출이 일본에서 배워 온 방식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0.3mm 정도의 두께로 빚은 얇은 밀가루피 속에 쇠고기 계란노른자 부추 파 양파 배추 등을 소로 넣어 빚은 물만두 비슷한 모양이지만 만두와는 달리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아 종각우동 비빔 당면 등과 함께 부산의 토박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지목되어 나이 든 사람들 사이에게는 애호하는 이들이 많다
18번 완당집은 왜 번성하지 않았을까 남포동 광복동 등을 오랜 세월 즐겨 찾던 나로서는 종각우동 18번 완당 비빔당면 함흥냉면 고갈비 등이 이숭기가 알린 씨앗호떡에 그 명성이 밀려버린 점이 참 아쉬운 마음이다
학창 시절에는 남포동이나 광복동이 젊음의 상징이었고 어지간한 상점들은 환히 잘 알았다 상점도 많지 않았지만 우리들에게 열려 있는 곳은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시절은 수평으로 복잡했지만 요즘은 수평수직으로 건물들이 늘어서서 어디 한 군데만 가도 온 정신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예전만큼 궁금하지도 않고 낯설기까지 하다 남포동광복동을 가더라도 예전에 다니던 곳만 찾아서 볼일을 보곤 바로 돌아선다 종각우동집 완당집 비빔당면 함흥냉면 고갈비 조방낙지 같은 음식점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다른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고 종각우동집 18번 완당집은 대를 이어 가는 애틋함이 서려 한 때의 빛나던 영광을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곳을 찾고 젊은 날에 기억하는 그 옛맛을 찾기도 한다 종각집의 우동 맛은 고명으로 얹은 쑥갓이 어우러지는 국물맛에 있었는데, 어느 해 들렀더니 그 해 쑥갓이 너무 비싼 탓인지 쑥갓 대신 부추를 넣어주었다 아마도 가격을 올리기가 부담되서 고명을 바꾼 것 같았는데 그런 이유로 더 이상 종각국수를 찾지 않게 되었고 가끔씩은 지나다가 그 집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또다시 들어가지는 않는다 고명이 부추로 변해 버린 종각우동집의 국물맛은 고명이 살짝 바뀐 것에서 옛 주인의 손맛이 변한 것 같아 마음이 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종각우동집 좁은 식당 안이 바글거려 다행이다 아주 오래 남아 있겠구나 싶었다
18번 완당집은 예전의 그 맛을 대를 이어 내고 있다 위치도 영화골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종각우동집과는 상황이 좀 달라 보인다 간판도 새것으로 달리고 점심시간이면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맛있는 여러 음식이 있지만 남포동 광복동에 가면 이들을 주로 찾는 것은 아마도 그 맛에 버물려진 옛 추억들이 함께 새록새록 입가를 적시기 때문일 거다 옛미화당 뒷길에 있던 고갈비골목에는 하나남은 고갈비 할매집이 있지만 혼자라서 가보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 내가 즐겨찾던 이들 식당이 대를 이어 가리라는 생각이 든다
젊고 당당하고 활기차고 쉽게 깔깔대던 그 어린 날들이 그 곳에 묻어 있어 그 추억을 찾고 싶은 날들이면 언제나 그 곳을 찾고 싶기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