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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막걸리

by 김지숙 작가의 집

산성막걸리




거칠게 빻은 통밀이

노란 꽃 피우면 다북다북 고루 핀

밀누룩 한 장 햇볕에 말리고

암반수로 지은 고두밥 고루 섞어

온도 맞춰 만든 막걸리

명절이면 큰 솥 위에 다시 얹은

솥 가장자리에 김새지 말라고

밀가루 으깨어 하얀 띠 두르고 잘 쪄낸 고두밥

한 줌 동그랗게 뭉쳐 먹던

지금도 입속에 남은 엄마 손맛

커다란 단지 부둥부둥 빚은

고두밥 누룩 넣어 광목천으로 덮어

몇 날을 삭인 달크무레한 막걸리

세월 흐를수록 술술 넘어가는

추억을 넘나드는 술맛




금정산성에는 공해마을 죽전 마을 중리마을 등 세 개의 부락이 구성되어 있고 금정구 금성동이라는 지역명이 있다 온천장에서든 화명동에서든 연계하여 산성버스를 타고 금성동 행정구역센터 앞에 내리면 금성초등학교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분교거니 생각하고 학교 안을 들여다보면 분교가 아니라 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초등학교이다 운동장 곳곳에는 야생초를 띠우기도 하고 교정 주변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운치가 있다

마을 입구를 친구 몇 명과 함께 날을 잡아 천천히 둘러본다면 생각보다 많은 볼거리를 찾고 그곳에서만이 느끼는 특별한 느낌들을 느낄 수 있다 곳곳의 야생초며 쑥 광대나물 원추리 등도 봄날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찾는 식재료꺼리들이 산 언저리에 늘려있다

산성막걸리 공장은 산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고 하얗고 커다란 개들이 공장 주변에 있어 접근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을 따라 내려오면 도자기를 만드는 공방도 있어 파기된 도자기들이 곳곳에 늘려있기도 하다 무심정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음식점이 있고 격식있는 자리라는 점을 제하면음식맛은 가격대비 그냥 저냥 무난한 편이며 곳곳에 파전과 막걸리는 파는 작은 가게들도 있다

산성마을은 오래 전에는 주로 염소고기를 파는 곳이었다 주변에 검은 염소들이 풀을 뜯고 손님들이 지정하면 그 염소를 잡아 피를 빼고 껍질을 벗겨서 구워 내는 형태로 이어졌는데, 가축을 아무 곳에서나 잡을 수 없게 되자 염소들은 대부분 모두 사라지고 대신 냉동고에 닭이란 염소고기들이 자리 잡게 되었고 산성마을의 식당들은 거의 이런 방식으로 염소며 닭백숙 요리를 하는 것 같다

최근래에 먹어보니 예전에 기억하던 그 숯불구이의 염소맛이 그 맛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염소고기를 먹으러 오던 사람들의 수는 줄고 대신 옻닭백숙이나 파전 막걸리 산채 비빔밥 등으로 식성이 바뀌었고 파는 집들도 한둘씩 사라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산성마을에 가면 염소고기 옻닭 간판은 눈에 띄고 예전에 하던 부모님들의 가게를 변경하여 새로운 업종으로 커피점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곤 하는 모습들을 본다 커피맛이 특별히 좋은 것도 모르겠지만 그냥 산성 풍경이 좋아서 차 한잔을 시켜 두고 계곡을 산을 바라보면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동문으로 성곽을 따라 고담봉에 이르면 상 안쪽으로 산성마을이 보인다 북문으로 들어서면 임도 초입부근에는 옛 천주교 건물이 있다 예전에는 차도도 없고 사람이 잘 다니지도 않는 곳에 위치한 이 페허가 된 건물의 골격만 남은 모습들을 볼 때마다 신앙심이라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저리 남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싶기도 했다

금정산성내의 마을 금성동 산성토산주는 물맛이 좋고 누룩생산으로 유명하던 곳이라 더욱 맛이 좋다 다른 술을 잘 마시지 않고 마실 줄도 모르지만 산성마을에 들르면 이 산성토산주는 한 모금 마시기도 한다 다른 ㅁ막걸리와 달리 누룩으로 담그기 때문에 막고 남은 술을 식초로도 만들어 먹는다 막걸리식초는 예전에 엄마가 부뚜막에 식초병을 두고 막걸리로 식초를 만들어 초장을 만들던 그 생각에서 그대로 시도하다 보니 식초가 되었고 음식에 넣어 먹는다 특유한 막걸리 냄새가 밴 막걸리 식초는 초장에 넣으면 털털한 맛이 있어 횟감의 비린내를 잡아주는 효과도 있어 회가 한 맛 더 난다는 느낌이다

지난 날들의 추억과 기억은 현재의 오늘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기억과 추억으로 추기되고 오래된 추억과 기억 중에서 고갱이만 여전히 남아 좀 덜 오래된 기억과 더불어 새로운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 그 속에 자리잡아 간다 그래서 남고 남은 기억과 추억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되어가고 나만이 지닌 나의 역사가 된다 나도 모르게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금정산 자락 아래서 봄날, 여전히 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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