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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당면

by 김지숙 작가의 집

비빔당면



먹을 것이 귀하던 피난민 시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식료품 팔던 깡통시장

당면 공장 주변 값싼 꼬랑지 당면으로

상인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

양념간장에 말아 바로 먹는 녹말면

목욕탕 의자 깔고 앉아

매끄당매끄당 쫄깃한 당면

눈 맞추며 긴 세월 흘려보낸 좌판 노포

여주인이 건네는 소박하고 편안한 맛



요즘도 가끔 남포동 먹자골목을 지나면서 좌판을 지키는 상인들의 모습을 본다 예전 같지 않게 사람들의 발길은 뜸하고 먹는 사람도 어쩌다가 한둘 정도이지 거리가 온통 비어있다 한 때의 영광이 이렇게 사라지는 걸까

남포동은 70-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번화가로 기억된다 서울의 명동에 버금가는 곳이 바로 남포동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권은 서면으로 해운대로 광안리로 나뉘면서 번화가의 개념은 사라졌다 실은 차를 타고 다니기에는 주자창이 불편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거리가 멀어 자연 사람들의 발길은 드물어지고 물건을 사기에는 대형마트처럼 차대기 편하고 물건 다양하고 쾌적한 쇼핑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시장의 가격은 인터넷쇼핑을 따라잡지 못한다 강적을 만난 셈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다 보니 자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뀐 것이다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누가 비빔당면을 먹겠냐만은 추억을 이기는 것은 별로 없다 요즘 사람들이 예전의 보릿고개에도 못 먹었던 보리밥을 건강식이라며 굳이 찾아 먹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비빔당면이 부산을 대표하는 한국전쟁을 상징하는 대표 음식 중 하나이다 625가 되면 주먹밥에 소금을 찍어먹으며 그날을 상기하던 제대한 이웃집 상이군인 아재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비빔당면도 그 같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비빔당면은 간단하지만 그 맛은 간단하지가 않다 불지 않고 적당히 통통한 당면 위에 얹어주는 간장을 비벼 먹으면 왠지 모를 맛이 하나 더 있다 굳이 말하자면 추억의 맛일까 시험이 끝나고 단발머리를 한 여고시절의 추억 그리고 청바지에 통기타로 캠퍼스를 누비다가도 남포동 음악다방으로 발길을 돌리던 중 먹던 비빔당면 비빔당면의 맛에는 이런저런 추억들이 너무 많이 얽혀 있어서 그 맛은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 살아가면서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

그 젊은 날의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다시 시작했을까

추억 속의 음식을 대하면 나는 언제나 같은 질문을 내게 하곤 한다 나는 과연 잘 살아내고 있는걸까

내가 내게 당당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곤 한다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조심스럽게 언제든 지금의 내가 처한 여건에서 내가 가장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을 새롭게 방향전환을 하면서 유연하게 살아가기를 반복한다

그건 이전의 내가 꿈꾸던 일들을 찾아가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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