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의 슬픈 그 아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이미 나르시시즘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과는 다른 성향을 갖는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상실되어 있고 이 존중감은 환경 속에서 혹은 부모의 영향으로 태생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을 비난하는 말에 민감하며 이로 인해 자기 부정성이 강화된다 이러한 정서는 정신적인 면에서 볼 때 사람들의 말을 자기 기준에서 왜곡되게 해석하는 습성을 갖게 되고 스스로를 질책하게 된다
적절한 외부의 평가에는 귀를 기울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외부의 평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평가를 하는 목적을 깨닫고 이에 대한 다양하고도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연습을 통해 스스로가 갖는 부정적 정서를 무용화하는 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 대한 장단점을 찾고 미래의 바라고 원하는 모습을 자기 미래상을 그려보는 것도 중요하며 자신과 과거의 일에 대한 연민을 찾아 위로를 보내는 방법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의 여건이 아주 부정적일 경우 탈피하거나 새로운 목표를 정해 달아나기에도 여유가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자신의 목표를 알고 이를 정당화하고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구체적인 시각화가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비난과 어린 시절의 상처와 직면한 고통들과 결별하고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중요시하는 마음가짐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에 충만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여유가 한없이 부족하다 여길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에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참 안타깝다 충분하 깨부수고 나올 충분하고도 남는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만든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옥죄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기족일 경우 그 안타까움을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과도한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자랐거나 방관 속에서 사랑을 원하는 받지 못하고 자라는 경우의 양면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과도한 가대에 대해 자신이 이루지 못한 좌절과 실패에 따르는 고통보다는 자신에 대한 시선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를 실패자 루저로 규정짓게 되고 칭찬과 멀어지는 비난에 자기 내면의 초점을 두고 부정성을 키우기 때문이다
방관적 손길로 키워진 경우, 칠 남매 팔 남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아들을 중요시 여기는 시대적 가치관 속에서 자란 여아의 경우에는 자신을 아웃사이더 번외자로 생각하는 부정적인 감정의 지배 속에서 성장하였기에 이에 대한 자기 내면에서 성장한 슬픈 아이와 수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슬픈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한 채 영향력을 자녀들에게 행사하게 된다
대부분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여린 면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신과의 관계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도 쉽지 않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에서 이루어낸 성공의 순간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런 감정에 대한 표현을 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는 누구나가 어린아이 한 둘 쯤은 갖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나이가 들지 않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고통받고 여전히 그 상처에 시달리는 어리석고 기가 죽어 슬픈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를 찾아 마음을 토닥이고 이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명상의 방식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사진이나 주변인들의 말들 그리고 자신의 기억들을 소집하여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를 긁어모아서 기억을 정리하고 재구성하고 이해하고 판단하여 지금의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은 버리고 잘라내고 그 가운데서 힘을 주는 부분은 다시 재소환하여 기억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복잡한 서랍 속을 정리하듯이 어린 시절의 슬픈 나를 잘라내고 정리하여 그래도 남은 내가 있다면 지금의 현실 속의 나와 손잡고 악수하는 방식으로 정리를 끝내야 한다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하고 넘어가야 어른이 되는 까닭에 미룰수록 더 하기 싫고 물에 젖은 솜처럼 힘들어진 마음을 추스리기에는 혼자힘으로 버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하고자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
부모 역시 초보 부모였기에 잘할 수는 없었다는 미안함과 후회의 감정이 밀려와도 과거는 어쩔 수가 없지 않았을까 라는 이해의 시각도 보내본다 이미 자신이 어린 나이의 부모가 되어 보면 스스로도 역시 그러지는 않을까 그보다도 더 못하지 않았을까 라는 여러 원인과 다양한 이유를 되새기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 고통받던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그런 상태에 놓인 어린 자신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보듬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내 속의 그 슬픈 어린아이와 결별하거나 그 슬픈 아이를 끌어안고 한평생을 더불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 슬픈 그 아이는 지금의 내가 아니고 나는 스스로 그 굴레에서 벗어나서 비교적 잘 살아가고 있는데,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어느 면에서만 유독 슬픈아이와의 관계에 고착되어 있다 그것을 벗어나려는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은 상태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애달파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는 그 슬픈 아이와 이별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새길이 열린다 지나간 과거는 이미 전생이나 다름없다 손댈 수도 고칠 수도 없다 가슴 아프기보다는 이해하고 이해 안 되면 그냥 흘러가게 놔두고 잊는 게 상책이다 그만 보내버리자 내 속의 슬픈 그 아이
사진제공 성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