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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냥 흘러가자

 우리, 그냥 흘러가자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오고 진리로써 여여하게 가도록 내버려 두는 <여래여거如來如去석가모니 부처는 자신을 가리킬 때에 여래라고 했으며 금강경金剛經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제17에서는 여래를 <모든 법이 이치 그대로>라 하고 위의숙정분威儀寂淨分 제29에서는 <어딘가에서 온 것도 아니고 어디론가로 가는 것도 아니라>하여 여래를 언급한다   

불교에서 삼시업三時業은 순생업順生 순현업順現業 순후업順後業이 셋을 통칭하는 말이다 전생에 지은 업은 현생에 현생이 지은 업은 내생에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들을 한다 요즘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니 어제까지의 지난 일은 전생 오늘은 현생 내일은 내생이라고 반의 반쯤은 맞는 말이고 또 반의 반쯤은 억지고 반의 반쯤은 희망이고 반의 반쯤은 사실 같다 

또한 전생의 일을 현생에 받는 것이 아니라 어제 지은 죄를 오늘 받고 오늘지은 선업을 내일 받는다는 생각이라면 위안도 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지은 모든 악업이든 선업이든 내가 살아생전에 다 받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처럼 아등바등 발버둥 쳐봐야 삶이란 유한하여 거기서 거기까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이야 내일이 어찌 되든 오늘도 제 잘난 맛에 살아간다 그래서 좋고 그래서 나쁘고를 떠나서 타인에서 해를 줄 때에는 얘기는 달라진다  

어떤 모임에서든 지나간 과거 혹은 전생으로 여겨질 만큼 케케묵은 과거 이야기를 꺼내거나 비슷한 시기의 전생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꼭 있고 그러다 보면 분위기는 옛날의 상황으로 돌아가 그들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어 그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은 멀뚱할 뿐이다 

나는 과거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지나간 일에 시간을 투자하여 즐겁다면 또 모를까 좋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내어 고통을 유발한다면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 감정낭비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야기나 미래를 주제로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면 좀 좋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한 때 찬란했던 자기의 과거 전생도 모자라서 주변인들의 전생 그 주변인의 친인척 연애담 성공담 같은 말을 하여 듣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자리에 함께 하면 늘 이건 아닌데 왜 이 자리에 있지 라며 갑갑함을 느낀다 

오죽하면 자랑하려면 <돈 내고 하라>는 말까지 나올까 처음에 이 말을 들을 때에는 물질 만능주의의 최정점 시대를 살아간다는 점을 실감하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만나면 아무런 주제도 없고 이익도 못 되는 그렇다고 정보도 아니고 이해를 구하는 것도 아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무런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어떤 서슴없이 늘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제자랑에 정치며 드라마 같은 별 재미도 없는 이야기에  남의 귀한 시간 빼앗는다      

삶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마음의 여유를 못 가져서인지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 강박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자연 속을 거닐 때에는 그런 말들도 새소리쯤으로 여기며 듣기도 한다 그럴 여유도 있다 그냥 느긋하게 차도 마시며 꽃도 보고 하늘도 바라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도심 속 갇힌 건물 속에서 시간을 쪼개어 만난 사람과 보내는 그 시간들 속에서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누리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를 닦달하며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덕분인지 유독 시간들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이 크고 나는 과연 이들과 유익한가에 강박감도 종종 갖는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지난 이야기를 하지 않겠냐만은 현재나 미래에 도움이 될만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내용이나 사람들의 험담은 들어주고 자기 자랑 자화자찬에 일일이 장단 맞춰주기가 쉽지 않다 왜들 그런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런 이야기로 끝내는 시공간에 굳이 달려가 만나고 시간을 허투루 보야 할까 

시절 인연時節因緣이란 본시 때가 있어 만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헤어진다는 의미로 운서주굉雲棲株宏1535~1615의 선관책진禪關策進에서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이 시절인연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업보라는 궤가 맞아떨어지는 관계에서 온다 우리들이 관계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지하고 나아가야 할지 혹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잠깐 만나고 깊은 관계를 갖지 않아야 하는지 절친인지 절교인지 화해인지 다양한 관계를 고민하면서 과연 나의 주변에는 어떤 유형의 관계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혹은 지나간 관계에 연연하는지 잘 처리하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각기 자라온 환경과 살아가는 환경과 각자가 처한 현재의 상황들이 다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고 스스로를 부단히 설득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이 용서되지 못하고 틈만 나면 음해하고 상처를 주는 최악의 관계를 선뜻 벗어버리지 못하는 상황을 살아가기도 한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어떤 기회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졌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어떤 기회를 누릴 기간이 없어져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연이 되었다는 것은 관계를 유지하고 에너지를 쏟아부을 기회가 생겼다는 뜻이다 살다 보면 자신에게 더 많이 부을 에너지를 상대에게 아낌없이 붓는 사람이 있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울 만큼 그 안쓰러움이 눈에 보인다 정작 자신은 그걸 모른다

한 때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잠깐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건 어리석은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자신에 대한 챙김을 잊는 사람이 되고 인간관계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어져 일방적인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퍼 주고 싶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퍼준다고 넙죽넙죽 다 받아 챙기는 상대를 보면서 부처나 예수가 될 요량이 아니라면 그리고 화수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썩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냥 쉼 없이 퍼주거나 퍼받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면 괜히 안쓰럽고 또 왜 저리 사나 싶다 알만큼 알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정말 왜 저러나 무슨 생각인가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인연이 되면 되는대로 놔두고 좀 더 편안하게 여여롭게 오고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성싶은데 일일이 간섭하고 초지일관 자신이 뜻한 바대로 타인을 체스판의 말처럼 이리저리 옮겨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을 바라보노라면 조언하고 싶지만 오지랖 넓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그 속내를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어떤 말을 할 수는 없다 어쩌면 남에게 퍼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써도 써도 끝이 없는 상황일 수 있고 또한 그런 행동으로 자신의 커다란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면 어쩌겠는가 

굳이 사람을 잡을 필요도 놓을 필요도 없이 내 앞으로 오는 인연에 대해서 깊이나 넓이 폭의 분량만큼 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일까 가장 자연스럽게 인연 따라 그냥 흘러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게 누구든 인간관계는 시절 인연이 있어야 하고 오고 감이 여여로워야 한다 여유롭지 않다면 시절인연이 아니다 혹 모른 채 지나가는 인연은 없을까 주변을 살피고 살피면서 굳이 애쓰지 않아도 손잡게 되는 인연과 손 놓아야 할 인연에 대해 자주는 아니더라도 해가 바뀌고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이즈음에는 누가 내게 시절인연으로 여여롭게 진실로 다가오는지 혹은 여여롭게 떠나가는지 한번 정도는 생각해 볼 일이다

억지로 인연을 만들어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게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상대가 어떤 고충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그 고충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내야지 거기서 더 나아가 어떤 도움을 주고 그 도움이 유익했는지에 에너지를 쓰고 그 결과를 생각하고 기대하는 일은 정말 피곤하다 스스로에게는 아무 이익이 없고 타인이 원하지도 않는데 굳이 왜 같은 희생을 반복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아니 어쩌면 희생이 희귀한 시대이니 적응이 잘 안 되어서일까 희생 자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생의 만족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남의 입장에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게 전체적인 면에서 한번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그 희생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인지 단지 그 순간순간의 위로받기 위해 뒷생각이나 전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인지  

사람은 스스로 살게 되어 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데 타인에 대해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 것도 그다지 옳은 일은 못된다 도움을 청한다면 최소한의 정도로만 도우면 된다 지나치게 과한 친절이나 도움은 스스로 살아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너무 남을 생각하며 살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게 누구이든 

사람의 인연도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무심하게 그냥 흘러가자 물이 어디서 흘러왔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이번 생도 밍밍한 물처럼 자연스럽게 그냥 흘러가자 그래 그렇게 살아가자 나라도 나의 몸과 마음을 잘 챙기며  내 영혼이 내 몸을 따라오도록 속도를 유지하며 잘 살아가자 어쩌면 그게 가장 잘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진 성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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