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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시인 혜월당 Apr 28. 2024


때로는 삶도 리셋한다

때로는 삶도 리셋한다




전생前生이란 생명을 연속적 개념에서 바라본 현재의 생 즉 금생今生 이전을 말한다 AI에게 물어도 전생이란 과학적인 증명이 되지 않은 상태라는 답이 나온다 현재의 시간을 기준으로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우리의 과거가 되고 그 과거는 전생이 된다 전생에 대한 증명은 과학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종교 철학 문화의 관점에서 인도교 불교 등에 따르면 전생과 윤회를 거듭하며 영적 깨달음에 이른다 

무효無效, void라는 말은 단순하게 효과가 없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법률용어로 사용되는 무효는 법률행위의 성립당시부터 법률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처음부터 아예 어떤 원인에 의해 효력이 없다는 뜻이다

상대에게만 베푼 친절하고 소중한 감정을 모두의 앞에서 풀어 보여 그 소중한 것들이 자신에게만 내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키면서 그 모든 감정을 무효화시켜 한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게 만드는 사람들과 마주하기도 한다 

또 정성껏 준비한 마음을 자신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그간에 들인 모든 정성을 무효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나아가 누구에게나 다 주는 물건 중 하나를 자신도 받았을 뿐인데 그게 뭐 고마운 거냐면서  고마운 마음을 무효시키는 사람과 대면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없는 것과 같다 전혀 어떤 효력을 드러내지 못하는 무효이다 정말 표현하지 않으면 알지 못할까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른 비 언어적인 표현 방법은 있다 

그 어떤 행동이나 표정이나 몸짓으로 말을 대신하여 반응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모티콘을 사용하여 지금의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가벼운 눈웃음으로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카톡이나 문자를 읽기만 하고 이도저도 반응이 없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아무 표현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다 알아주리라는 것일까 눈치 없고 생각 없는 상대에게 이러한 무반응의 답은 어려운 숙제일 뿐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개인심리학자 A. 아들러 Alfred Adler, 1870~1937에 따르면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관점에서 과거의 원인이 아니라 현재의 목적 때문에 움직이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부정한다 과거는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관점을 고수한다 

누구나 자신의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이것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이는 우리가 처한 환경을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힘을 길러 건전하게 극복하고 해결하여 온전히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원동력이 된다 다양한 방법의 대화 또한 무한한 효력을 지니거나 일순간 무효화 되기도 한다  

상대를 이겨 승리하기보다는 자신을 이겨 승리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상적인 자신의 상태에 도달하여 자기완성에 이르는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여 서로 돕고 인류에도 도움이 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따라서 타인을 착취하고 이용하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인격의 왜곡을 낳는 나쁜 방법이기에 매우 불건전하다 이러한 추구에는 힘과 노력의 소모가 많아 긴장이 증가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게 된다 조화롭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절한 대화법이 필요하며 상대에 대한 반응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이는 고대 인도인들이나 불교의 교리에서 볼 수 있는 현재 상황은 과거의 업이거나 과거의 행위가 현재의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념은 과거에 짓눌려 현재를 대면할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자유로움이 있을 수 없다는 아들러와 관점과는 관념과는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자각은 치유와 우월성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바탕으로 경험하고 문제를 일으키지만 자각을 기반으로 추측하고 결론을 내기보다는 이를 방해하는 요소들에 의해 판단하고 살다가 죽는다 개인의 독자적인 삶에 대한 견해와 방식을 자각하고 살아간다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 큰 차이를 지닌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이후 그 간의 프로이트의 심리학 이론에 빠져 과거의 심리를 운운하고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찾고 다시 투사하고 고착 지점을 찾고 이를 현재에 연결하여 현재의 행동과 미래를 내다보던 관점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누구를 미워하면 다음 생에 만나다고도 하고 현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끄트머리를 풀지 않으면 다음 생에도 엮인다고도 하고 이번 생에 깨달으면 다음 생에는 귀한 몸으로 태어난다든가 열심히 마음을 닦으면 다음 생에서는 훨씬 고차원적인 생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가 편한 대로 과거나 전생이 있다 했다가 없다고도 했다가 일관성 없이 말하곤 한다

짧든 길든 지나고 나면 전생이 된다 이러한 논리는 억지가 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정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손댈 수 없는 시간들로 기록되며 따라서 온전히 사라진 시간이므로 전생의 부류에 넣어 볼 수도 있다  

말하고 싶은 점은 따로 있다 나쁘고 불쾌하고 아프고 지난 일들은 전생의 일처럼 놓아버리고 과거 역시 지난 일이니 놓아버리고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게 하려는 의미이다 물론 이 과거나 전생은 부정적인 의미로 일관될 때를 의미한다 과거에 휘둘려 현재 시간을 어이없이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꼼꼼하고 소심하고 나약하고 착하고 여린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리고 그런 자기 마음을 생각해서 함부로 말을 하지도 못하고 선뜻 그런 상대를 저지하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소심한 이들에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고 자기 마음대로 떠벌리는 것은 괴물같이 여겨진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질 낮은 인간을 대면하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감정의 소비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그런 상황이나 사람들을 버리고 비우려 해도 귓전에서 맴도는 말들이 잊히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런 상대를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달리는 자신을 이해하기도 힘든 경우도 있고 그런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괴로운 경우도 있다

마음을 다잡는다고 쉽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게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느낀다 한편으로는 소심한 자신은 정신적으로 시달리는데 상처를 준 상대는 뻔뻔하게 세상을 활보하면서 마음껏 누리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왜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걸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상처 준 사람들은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들은 그 기억에 사로 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받은 상처도 억울한데 그 상처에 꽁꽁 싸여 시간을 허투루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억울한다 

모르고 지은 죄는 죄가 없다는 그 우스꽝스러운 합리화나 죄는 지은대로 간다는 그 불합리화는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죄지은 사람이 더 출세하고 더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선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받은 상처는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은 과연 상처받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몫일까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더 치유하기가 힘들다 먼 타인이 준 상처는 그나마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무효화되고 뇌리에서 사라지지만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남는다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혹은 그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사람만 봐도 가까이 가지 않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운 부모 형제나 가족 간에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얼까 어느 종교에서는 상처를 무시하거나 도피하거나 숨기거나 하지 말라고 하고 염려도 원한도 갖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죄를 고백하라고 한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나음을 받으라고 한다 원수는 그분이 교제와 기도 예배를 통해서 다 갚는다고 하고 상처를 치유한다고 한다 

가까운 이에 대한 기대 심리로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받는다 해결책으로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고 그 용서가 해결책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용서는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조금의 잘못이 있다면 내가 너를 용서한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때로는 지은 죄도 없는데 상대가 용서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게 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지은 죄가 없는데 왜 용서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용서받을 사람은 바로 내 앞에 있는 당신이 아니냐고 말해 야 옳은데 상대방은 자신이 잘못하고도 뻔뻔하게 자기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내가 너를 용서한다는 그 말을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게 하는 몰염치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에게 할 말을 상대에게 말한다 자기 잘못을 죽어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서 그걸 투사시켜 마치 상대의 잘못으로 변질하여 말하곤 한다 알고 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고 모르고 보면 속이 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 소심한 사람의 속은 더 곪아 터진다 왜 그런 말을 할까 그릇된 행위에 대한 의무 면제와 그 보상에 대한 탕감이라는 의무로 용서는 오히려 의문과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용서한다는 바로 그 자를 내가 용서해야 비로소 모든 감정의 리셋, 즉 해결점이 보인다 

그 일들은 과거이고 전생이라 현재의 삶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리셋된 관계로 치부하고 그냥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의 전부는 리셋되지 않더라도 남아 있는 내 삶은 내가 리셋하여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 누구도 용서라는 이름으로 당사자의 삶을 리셋하지 못하며 오직 당자인 자신만이 자신의 삶을 리셋할 수 있다 그게 오랜 고민 끝에 얻을 수 있는 관계를 정리하는 답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삶을 리셋할 필요가 있다 걸러야 할 인간관계 걸러야 비로소 정리가 되는 사람 사이의 일들이 주변에는 너무 많이 늘려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시간을 두고 과거를 만들고 전생으로 만드는 것이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평면적 입체적 증강적 등으로 변하게 된다 

이미 뇌리에서 사라지고 이름 정도만 남은 1차원적 평면적 인물 가끔씩 문안인사 정도만 하고 어쩌다 지나치면 눈인사 정도를 하는 2차원적 입체적 인물 눈앞에서 현재의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지만 미래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을 3차원적 인물 과거와 줄곧 연결되어 살아가지만 여전히 현재도 미래에도 개입될 여지가 충분한 다차원의 인물이 주변에는 있고 그 인물과의 차원을 정리하며 인간관계의 의미를 나 중심으로 리셋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사진 제공 성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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