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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시인 혜월당 May 08. 2024

혼자서도 빛나는 사람

혼자서도 빛나는 사람




혼자서도 빛이 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존중하며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언제나 단 한 명은 자기 편인 내가 있다 아무리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터에서도 무한한 사랑으로 믿어주고 배려하는 자신이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은 아니다 

존중은 개인의 특성을 수용하고 그가 원하는 삶의 목적과 선택을 비소유적 긍정적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이 존중은 인간이 가진 존재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있는 그대로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입장을 자각하고 해석한다

존중은 상대의 능력과 경향을 신뢰하고 배려하는 의미가 담기며 개인이 가진 행동방식이나 감정 의미 등을 가진 상대를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담긴 것을 의미한다 대상을 존중하는 이 마음이 바로 응원하는 행위와 일맥상통한다 

이 존중이 자신을 향하여 열린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혼자서 빛이 날 수 밖에 없다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타인 또한 존중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을 사랑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사랑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보면 된다  

응원應援은 힘을 내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마음이고 흐린 날 먹구름 속에서 비치는 한 줌 햇살처럼 살고 싶게 만드는 마음이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점을 안다면 응원의 힘은 바로 그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자신을 응원하는 힘 또한 어떤 힘보다도 강력하다 그래서 응원은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불러들인다  

살면서 그런 상황에서 받는 응원은 사막에서 마시는 물 한 모금 보다 더 귀하게 다가온다 그 소중한 마음을 자신에게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귀하게 여긴다는 의미가 내포되며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가능하며 이 방법을 터득한 사람만이 타인을 현명한 방법으로 잘 사랑하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응원보다는 시기 질투가 더 많은 물질 만능주의 속에서 살아가면서 만약 주변에 내게 그런 응원을 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전혀 기죽을 필요가 없다 바로 내가 내게 존중과 응원을 보내면 된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존중받고 싶고 인간인 이상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받아야 할 가치에서 오는 존중이 아니라 수많은 조건들 속에서 상대방이 가진 어떤 특정한 조건을 통해 존중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요즘의 세상에서 인간관계는 어떤 조건 없이 상대의 태도를 수용하고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존중을 찾기란 부모자식 간 연인 간 나아가 형제간에서나 가능한 상태는 아닐까 이러한 존재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라면 가히 가능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이미 선택할 수 없는 환경과 관계 속에서 태어나 정해진 서열관계 속에서 이해와 존중을 보내거나 멸시와 천대를 받아온 그대로의 상대와의 관계를 받아들이고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그 마음들이 무조건적인 혹은 조건적인 사랑과 존중에 적응하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요즘 어린아이가 귀하다 보니 태어나서 하는 행동들이 모두 남들과 달리 보이고 대단해 보이고 다른 아이들은 하지 않은 아주 특별한 행동을 자기 아이만이 한다고 여기며 특별히 기록하고 세상에 알려지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자기 자식은 천하에 둘도 없이 귀하고 세상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물론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특별하고 귀하다 여기는 점은 다 연하고 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이유에서든 특별히 존중하는 척하며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자기보다 못나거나 못살거나 한 사람들에게는 이유 없이 무시하거나 깔보기도 하고 그런 대접을 어이 없이 당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그 존재만으로도 귀하게 여겨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열을 정하고 관계의 소원을 정하고 격차감을 불러들이는가 하면 외양으로 판단하여 그 나름대로의 가치로 판단하고 차별하고 무시하며  마음대로 평가내리곤 한다 

자신의 직업상 소중한 자기는 어디로 팽개치고 상대의 부름이나 요구에 100%로 자신을 기여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고 나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삶은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그 요구는 끝없이 늘어나며 그게 서로에게 아무런 긍정적인 상황을 키워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그 생각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면서 곧바로 다른 세상을  보게 되고 당시의 판단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하며 자포자기 속에서 나온 자학이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척한다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 깊이 공감하기보다는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척하는 행위를 잘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무조건적 긍정이 아니라 조건적 긍정적 존중과 솔직하지 못하는 차가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경우 상대와 깊은 신뢰를 형성하기 어렵다 

진정성을 갖고 일관성 있게 상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보내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있을까 부모 자식 간만큼의 무조건적인 존중과 신뢰를 주고받는 인간관계는 얼마나 될까 요즈음은 인간관계라는 인생길을 가면서 자주 되돌아보고 점검하며 조절을 한다 어떤 사람인지 보다는 내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다 늘 이런 의문과 질문 대답을 하면서 지속하던 인간관계를 돌이켜 보곤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시간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내가 쏟는 에너지의 질량과 상대에게서 되돌아오는 에너지의 질량의 무게를 재게 된다 이러면 곤란한데도 말이다 그냥 물이 흘러가듯 보낼 것은 보내도 되돌아오는 것은 받으면 될 것을 그러지 못한다 그게 물질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라면 더 애가 타기도 한다 

정말 내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만큼 나는 상대에게 그런 배려와 존중을 받고 있는 관계인지 한 번씩 점검하게 된다 기껏 쏟아낸 에너지와 관심을 한껏 무시하고 돌아오는 허탈감이 더 많이 돌아온다면 기본적인 관계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과연 이를 지속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아무런 관계의 이유가 사라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누구의 호구로 살아가는 일은 서로를 위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작심을 하고 기증한다거나 봉사한다거나 누구에게 갖는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일방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행동들 속에서 지나치게 상대에 대한 조건적 만남이나 존중이 지속된다면 피곤한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가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들인 경우에는 어떤 이기심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존중 respect에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상대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믿어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 사람이 지닌 고유한 성품에 대해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상하관계 속에서 그리고 친구 지인의 관계 속에서도 이러한 존중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고 상대가 가진 역량이나 금력 권력 명예 외모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대접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클수록 관계의 긍정성도 높고 서로에 대한 배려의 폭도 넓어지고 돕고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며 서로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한편 나아가 화합하고 화목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선한 영향관계에 놓인 경우보다는 상대를 이용하고 상대가 가진 어떤 조건이나 능력에 대한 탐심으로 상대와의 관계와 존중을 이어가는 경향을 맞게 된다 이럴 경우 속이 뻔히 보이는 상대의 존중에 기계적인 화답을 하지만 마음이 가지는 않는다 

무조건적 존중을 보냈는데 조건적 존중으로 돌아온다면 그 관계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믈론 그런 경우 무조건적인 배려나 존중을 보내기보다는 때로는 상대가 보내는 조건적 존중과 배려를 되돌려 보냄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가 아둔해서 눈치채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혹은 마음의 도를 통하여 너는 그렇게 해 나는 계속 나방식대로 할 테니라고 관계를 지속할 수도 있긴 하다   

이런 마음은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사용하면 된다 나는 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성장한다 타인이 나를 존중하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존중하면 된다 내 속의 나는 내가 나를 인정하는 긍지를 형성하며 살아가기에 남들의 존중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  

자기 존중이 강한 사람은 건강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는다 타인으로 하여 나의 존재가치가 정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눈높이에서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존중의 처음은 부모의 격려와 칭찬에서 비롯된다 부모에게 존재가치를 인정받는다면 다른 사람에게서 잡다한 존중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대인관계에서 존중은 좀 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무조건적인 신뢰와 존중을 받아본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러한 존중을 쉽게 보내게 된다 무조건 존중을 받고 자란 경우 상대의 존중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 상대가 끊임없이 조건적 존중을 보내거나 배려를 빼먹는다고 해도 비교적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런 관계는 건강하지 않기에 관계를 지속하기보다는 변경을 하거나 수정 혹은 끊어내야 한다

인간관계는 서로 보고 배우고 닮아간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비슷한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 혹은 공생관계로 혹은 호구 관계로 진하게 엮여 있다 지금 마음의 눈을 찡그리며 억지로 관계를 잃어가는 경우가 있다면 유유상종 공생관계 호구관계 중 어디에 속하며 존중이나 배려가 그 사이에 존재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게 나를 존중하는 마음의 첫 단추가 잘 채워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넉넉히 빛나는 사람들은 맨 처음 빛을 발하기 시작할 무렵 자신에 대한 존중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지속적으로 자기 존중심 자기 배려심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하는 반의 반만큼이라도 자신을 배려한다면 결코 자신을 혹사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이 소중한 지를 알고 인생살이를 덤벼야 제대로 자신이 건강하고 반짝반짝 빛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진제공 성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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