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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by 김지숙 작가의 집


경계




바람 없는 거리,

낯선 그림자들이

내 길을 스치고 지나간다


넓은 손 교만한 눈빛

무례한 말들이 날아든다

돌담 위에 선 작은 나무가

뿌리를 지키듯

칼날 같은 말에도

속을 내비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

말을 흘려보내고,

친절과 냉정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선을 넘나드는

분노와 요구는

내 안의 평온을 갉지만

세상의 중심은 오직 나


때로는 바보처럼

때로는 차갑게 돌아서며,

나를 지키는 찬바람 속에서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 중에서도 오지랖이 넓다거나 교만하거나 주제파악이 안되거나 상대의 호의를 호구로 여겨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도를 넘는 참견 傍若無人방약무인 眼下無人안하무인厚顔無恥후안무치無人 回賓作主회빈작주 厚顔無恥후안무치한 인간들이 대표적인 분노 유발자 부류에 속한자들이다

이들은 남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고 나만 잘되면 그만이다 아무리 잘못해도 신앞에서 회개하면 모든 죄는 사라진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타인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자신만의 안위만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위해를 가하는 인면수심 파렴치한 인간이다 우리는 이들을 일상에서 다반사로 만나기도 하고 인터넷 상의 소위 '읽씹'이나 악성댓글 같은 무례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상대에게 피해를 주고도 어떤 죄의식은 커녕 오히려 자신이 잘나서 상대가 당하는게다 여기며 이를 당연하다고 자부하는 선민의식마저 지닌 파렴치한이기 때문에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때문에 살면서 이들과 얽히고 또 만나게 되는 날들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길고 짧은 고민들을 하게 된다

하루는 엘리버이터를 타고 있는 중 초등학생의 대화를 들었다 자기 엄마가 말하기를 <받은대로 똑같이 해줘라>고 말했다며 그 말이 무슨 절대 명령인양 으스대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대화하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이지만 순간 당황스러웠다 상대 아이는 씩씩대며 말하는 투며 흐트러진 옷 매무새며 똑같이 대해주다가 싸움을 크게 하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오는 모양새였다

아무 때고 똑같이 맞받아쳐서 상대를 대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옳은 일인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 맞받아치는 것이 자신에게 더해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고 있었다

우리는 상대와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 하나도 더 나은 사람이 없기에 서로를 공격하고 짐승처럼 싸운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두 사람이 서로 비슷한 수준이라 싸운다고 생각하며 싸우는 사람을 먼발치서 구경하며 한사람도 양보하지 않고 싸우는 품새를 관찰한다

그렇다고 극도의 이기심으로 상대의 삶에 지나치게 선을 넘어 온다거나 자기 이익에 급급한 무례한 인간이 싸움을 걸어오는 경우 혹은 시시콜콜한 이유로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고 자신의 이기심을 폭발시키는 인간에게 성인군자처럼 다 받아줘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매번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럴 때마다 여유를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 넉넉한 인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과 사람들이 싸움 하는 경우, 둘다 안면으로는 어느 편도 들지 못할 때는 비교적 관찰하는 편이다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싸움판을 지켜 볼 뿐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에 말릴 수도 떼어 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싸우면서 살아간다 정의를 위한 싸움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시시콜콜 크고 작은 이익을 위해서 목숨걸듯 싸우는 것은 정말 질색이다 작은 이익을 위해 싸우는 자리는 피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건 좋은 습관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된다

무엇이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딪치고 싸우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런 일들을 싫어했고 그럴수록 멀찌기 떨어지는 일을 택했다 조금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해결된다면 그냥 조용히 혼자 분노하면서 그 분을 삭이는 일도 서슴없이 선택하며 살아 왔다

그런데 최근 수많은 시간 속에서 또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치며 사는 동안 이 분노에 대해 터득하게 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인간이 내보이는 분노를 극복하는 방법을 현실이 아니라 새벽에 일어나기 직전 꿈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평소 감정을 긁어대며 언제나 반대를 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기 보다 내 앞에서 내보이는 나를 향한 공격을 마치 남의 싸움인듯 그 광경을 객관화하며 듣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가 걸어오는 싸움이나 말과 행동들이 시시하고 형편없는 아집에서 비롯되는 수준 낮은 지에 대한 판단을 순식간에 하게 되고 그 자가 휘두르는 이기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대하는 성숙한 자신에게 스스로 놀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꿈 아닌 꿈을 현실 앞에서 꾸게 되면서 시시한 감정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힘이 생겼다

어쩌면 더이상 그런 곳까지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오 것은 아닐까 분노에 대응하는 내적 힘의 게이지가 커진 것일까 살면서 참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을 만나고 그 인간들이 뿜어내는 다양한 무례함을 겪으면서 일일이 그에 분노하거나 일일이 그 상황에 기분 상하거나 그것을 격멸하거나 무시하거나 등의 다양한 판단들을 하고 지내왔지만 그러한 감정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 만큼 아까운 시간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냥 모든 사람이 자신과 다른 외모를 지닌 것처럼 그런 만큼 다른 류의 감정을 발산하는 인간이며 순간순간 자신이 무례한 상대에게 내보내는 감정을 끊어 상대가 발산하는 주된 의도가 뭔가를 느끼고 자신과 맞지 않은지 맞는지 똑같이 대할지 투명인간 취급할 지에 집중하여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상대가 요구하는 일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은 해 주고 그렇지 않으면 끊어 버리는 방식이 필요했다 전체의 이익을 해하는 정도의 큰 무례하거나 오만함 지나친 배신행위 등에는 분명 크게 분노해야 한다 하지만 오지랖이 넓다거나 '읽씹'하는 행위 자기 연민이 강해 타인을 감정의 쓰레기통 삼거나 오직 자기 이익만을 바라보며 행동하는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들이라면 이들이 행한 언행에 분노하지 말고 그 감정의 원천을 빨리 끊어낼수록 혹은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본인의 수명 연장에도 좋고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 낭비도 줄이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머리속에 오래 둘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러한 행위들을 지속적으로 행하며 끊임없이 나댄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무리 시간과 감정을 끊어 대처한다고 해도 도인이 아닌 피곤하거나 벗어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상대가 변하지 않고 엮이는 지속되는 상황이라면 더 하다 무례를 감당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힘이 들고 인내를 요하게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투명인간으로 취급하거나 사는데 지장이 없다면 어떤 경우에도 엮이지 않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찾아보면 좋은 사람도 많다 맞지 않는 사람에 연연해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 다만 시시 때때로 얼굴을 대하고 살아가야 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방책이 필요하다

이는 상대를 감정의 게임판에 끌어들여 더 이상 무례한 상대에게 당하며 살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괴로워하지 말고 즐겨라는 점이다 무례한 상대에 자신의 감정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그리고 그 감정에 소모된 시간들이 얼마나 아까운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고보면 알게 된다

하찮은 인간에게 소중한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고 스스로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에 대해 자책을 하게 되는 감정이 또한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닫게 된다 주변에 이런 류의 사람들은 삶의 감정영역에서 배제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그리고나서도 지속적으로 끼어 든다면 일단은 친절하게 인내하라 그러고도 변하는 것이 없거나 강도가 강하다면 그즈음부터는 철저히 방어해야 한다 경험상 대부분의 이런 류의 사람들은 친절하면 더 자신이 대단히 잘나서 혹은 자신을 숭배해서 무례하거나 무시해도 되는 줄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 갑자기 투명인간 취급을 하거나 가장 싫어하는 행동들을 하면서 상대를 관찰하는 상대가 가늠하지 못하는 돌발행동들을 해야 한다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친절하며 때로는 냉정하고 때로는 바보처럼 굴어 무례한 상대가 감정의 카드를 읽을 수 없게끔 판단을 오리무중으로 만들어 무례한 상대의 반응을 관찰하고는 그 중에서 상대가 가장 싫어하고 회피하는 감정표현을 찾아 상대가 피하게 하는 표현방식을 찾아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는 상대에게 지나치게 친절하다면 그는 호구되기를 자처한 사람이며 처신을 잘한다고생각할지 몰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위해가 되는 못할 짓이 아닐까 이를 깨닫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행동한다면 무례한 사람은 더욱 더 구제불능이 되고 이는 다른 사람에게도 폐를 입히게 된다

<손자 귀여워 하면 할애비 수염 뽑는다>는 속담처럼 버릇없는 개망나니를 만드는 일에 손을 보태는 일만큼이나 헛된 일이 어디 또 있으면 그 나쁜 버릇에 기름을 끼얹어 주는 바보같은 일이 더 있을까 개념없고 선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것은 그 버릇을 앞장서서 키워주는 꼴이 된다

나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라도 무례하거나 버릇없이 선을 넘나드는 질 낮고 나쁜 인간의 행동들에 선한 마음이 휘둘려서는 안된다 단체를 위해서라고 애써 말하거나 혹은 자기의 일편단심을 위해 타인에게 위해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건 옳은 일이 아니다 어쩌면 더 나은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선한 행동이 아닐까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쉽게 선을 넘는 인간들의 행위에 그냥 당하지 마라> 선을 자주 넘나들다 보면 어느 틈엔가 갑작스레 날아들어 품속의 날카로운 칼날로 상대를 베어버릴수도 있다 세상에는 내마음과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내맘 역시도 자주 변하여 관리하기 어려운 세상에 남의 마음을 온전히 믿는 다는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가끔 깨닫는다

선을 넘는 자가 공공의 적이라면 함께 뭉쳐 처리해야 하고 개인의 적이라면 홀로 깊이 궁리하여 다양한 방책으로 선한 마음은 지키되 결코 만만하게 보이지 않아야 하고 나의 속을 드러내 보이지도 않아야 하며 관계의 주도권이나 삶의 주권을 지니되 버려서도 잊어서도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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