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떼기죽

by 김지숙 작가의 집




구절초.png 구절초



울엄마의 빼떼기죽


하얀 분이 나온 납죽하니 잘 마른 고구마

한입 물면 나무짝처럼 딱딱하고 차갑지만

울엄마 손이 가면 허물허물 부드러워진다


친구들과 놀다가 다치고 분한 마음

울엄마 얼굴을 바라보면 달달한 빼데기죽처럼

어느새 스르르 녹아버린다



빼떼기는 생고구마를 얇게 썰어서 햇볕에 잘 말린 과자지만 고구마 말랭이보다는 훨씬 더 얇고 바싹 말려 딱딱하다 마르는 과정에서 빼뜰빼뜰 뒤틀려 이 모양을 두고 경상도에서는 빼떼기라고 하고 인정머리 없거나 마르고 꼬인 사람을 빼떼기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빼떼기죽은 거제도에서 시집 온 엄마의 손맛에서 어릴 적부터 익혀 알아 온 터이다 나도 빼떼기죽이 먹고 싶어서 일부러 생고구마를 사다가 말리곤 했다 고구마를 보면 자주 빼떼기죽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엄마는 겨울철 입맛이 없으면 혹은 간식거리로 일명 말린 고구마죽인 이 빼떼기죽을 쑤곤 하셨다

만드는 방법은 별 게 없다 하지만 여기에 무엇을 넣느냐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서 음식의 품격은 결정된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기장이나 찹쌀 콩을 씻어서 불린 후에 넣기도 하지만 엄마의 빼떼기죽에는 동부가 들어간다 물론 팥도 들어간다.


우선 말린 생고구마를 깨끗이 씻어 둔다 돈부 팥 생밤 은행도 누런 호박도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둔다

고구마 맛을 좋아한다면 호박은 넣지 않는 게 좋지만 우리는 누런 호박맛을 좋아가기에 꽤 많은 양을 자주 넣곤 했다

모든 재료를 한 번에 압력솥에 넣어서 만들거나 슬로우 쿡에 넣어 기다리는 손쉬운 방법이 있지만 예전에 엄마는 연탄불이나 가스불에서 뭉근하게 오래 끓이는 방법을 택했다


압력솥을 쓰지 않고 바닥이 두꺼운 찜통에 빼떼기가 푹 잠기고도 남은 2배 정도를 넣고 말린 생고구마(2인 기준) 500그람 정도를 넣고 처음에는 센 불에 나중에는 약불에 오래 뭉근히 삶아준다 삶는 과정에서 저어가면서 뻑뻑하면 물을 추가로 넣기도 한다 그러면 두께가 일정하지 않아 얇게 말린 고구마는 녹아서 죽이 되고 두꺼운 부분은 제법 뭉개진 채로 건더기 모양을 한다

이즈음 따로 삶아둔 깍둑썰기를 한 호박 100그람을 넣어준다

손톱으로 부서질 정도가 된 돈부 팥도 각각 100그람, 삶아 껍질이 제거된 밤도 100그람 정도를 뻬떼기죽에 추가로 넣어준다

마지막으로 꿀을 한 큰 술을 넣지만 생략해도 된다


다른 집이나 식당에서 빼데기 죽들을 먹어봤지만 엄마의 빼떼기죽과 맛이 달랐다 거기에는 찹쌀 기장 조 등이 들어가 정말 죽이라는 느낌이지만 엄마의 뻬떼기죽에는 그런 곡식류는 들어가지 않았다

잘 퍼진 빼떼기죽 위에 올려진 돈부 팥 호박 밤을 건져먹는 재미가 솔솔 하다


빼떼기죽에는 엄마의 추억이 듬뿍 들어가 있다 찬바람이 불 때면 많은 양의 빼떼기가 엄마의 친정인 거제도에서 보내왔고 그 빼떼기는 커다란 솥에서 맛있는 죽이 되어 동네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엄마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추운 겨울도 아주 따뜻하게 만드는 남다른 넉넉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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