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김밥
손가락 굵기로 속없이 잽싸게 만 김밥
익은 무김치 오징어무침 어묵볶음이 전부인 충무김밥
고기 잡는 뱃사람의 아내가 반쯤 삭힌 꼴뚜기 무침
무김치 도시락으로 햇살 득시글한 뜨거운 바다 위에서 먹는
찬 따로 밥 따로 김밥
시험이 끝나면 갈래머리 친구들이랑
동래에서 남포동까지 먼 길을 잠시도 쉬지 않고
조잘대며 씨그둥한 소리가 버스 안을 누비며
남포동 먹자골목 노포 찾아
충무김밥 어묵꼬지 먹고 영화 한편 보면
모든 일정이 끝나던 여고 시절
충무김밥은 충무가서 사먹어야 제맛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시절에는 충무김밥이 먹고 싶으면 남포동에 자주 갔다 친구들과 손을 잡고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면서 영화도 보고 충무김밥도 먹으며 입시에서 오는 압박감을 떨치곤 했다 참 오래된 이야기다 요즘은 입맛이 달라졌는지 충무김밥에 들어 있는 김치맛이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 선뜻 그 맛을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요즘은 굴나박김치가 자주 생각난다 그것도 엄마가 만든 적당히 익은 굴나박김치와 따끈한 흰밥 한그릇만 있으면 진수성찬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이맘때면 굴이 제철이다 찬바람이 불어야 굴은 한층 제맛이 난다 엄마가 잘 만들고 우리가 정말 좋아했던 김치 중의 하나가 굴 나박김치이다
나박나박 얇게 썬 무에 약간의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한 다음 고춧가루와 송송 썬 파를 넣고 멸치액젓을 넣는 것까지는 다른 집들의 나박김치와 다를 바가 없다
굴 나박김치는 우선 굴은 미리 씻어둔 채 물기를 뺀다 너무 물기를 오래 빼면 맛있는 물이 나간다고 대충 털털 터는 느낌이 좋다
엄마의 모든 김치에는 언제나 갈치 순태젓이 조금 들어간다 갈치속젓은 갈치의 내장만으로 만든 젓갈이지만 순태젓은 갈치를 통째로 갈아서 만든 젓갈이다 이 젓갈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김치는 익으면 익을수록 깊고 고소한 맛이 한층 강하다
난 솔직히 김치를 잘 담그지 못한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는 엄마의 김치를 결혼해서도 줄 곧 꽤 오랫동안 먹었다 김장철이면 어김없이 시골 시댁 김치를 먹었고 시댁이 없어진 다음부터는 바쁜 와중이라 시중에서 파는 모든 재료가 국내산인 김치를 사 먹었다 김치를 먹는 양이 많지 않다 보니 자연 김치를 손수 담가 먹을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입맛이 까다로워서 아무 김치나 잘 먹지는 않는다 어쩌다가 내가 담근 적이 있는데 맛이 없어 그 후로는 아예 김치는 담그지 않는다 그래서 시판하는 김치를 사서 갈치 순태젓을 조금 넣고 적당히 익혀 먹는 것으로 어느 정도 엄마의 손맛에 근접하는 맛을 찾아내곤 한다
반면 깍두기는 비교적 잘 담그는 편이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있지만 배추김치보다는 한결 간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양념에다 찹쌀 풀물에 사과 배 홍시 등을 갈아 넣으면 한층 더 맛이 난다 여기에 순태젓갈을 한두 숟갈 넣으면 익을수록 김치 국물 맛이 칼칼한 게 일품이다
어릴 적에는 잘 익은 굴 나박김치 국물에 적신 김을 더운밥에 올려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즈음 나는 가끔 이 굴 나박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추억 속 엄마의 김치, 그 입맛을 찾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