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하여-김지숙
오래동안 잊고 살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남을 위하는 일에 익숙하여
내 안의 나를 눌렀다
어느날 문득 알았다
나를 위해야 내가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차 한 잔으로
구름을 바라는 일로, 다독이는 위로로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일로
작은 순간마다 나는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나를 위할 때
비로소 나는 너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건 가부장적 생활 속에서 남존 여비의 삶 속에서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여러 관습 속에서 살아남는 비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하고 친지를 챙기고 사회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살아가는 삶.
이렇게 살아보면 정작 자신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초라해지고 지친다 안 아픈 곳이 없을 만큼 다른 곳에 여유를 낼 수 없을 만큼 지친다 자신이 바라고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은 외면하고 다른 사람의 기대와 필요를 채우느라 나의 힘과 노력을 들이고도 애써 웃어주어야 하던 날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누구를 위한 삶도 지탱할수 없다는 것을. E. 프롬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기 돌봄self-care이 부족한 경우,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인정과 보상을 갈망하고 결국은 지치고 상처받는다. 나를 위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존중Self-compassion 하고, 자기마음에 귀Mindfulness 기우리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에서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 위 단계인 사랑과 존중, 자기실현에 도달하기 어렵다. 내가 먼저 나를 돌보아야 비로소 타인에게 의미 있는 사랑과 배려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을 소홀히 하면서 타인을 챙길 수는 없다 내가 나를 먼저 챙기고 나를 단단히 해야 비로소 타인을 잡아줄 힘이 생긴다
나를 위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피곤한 날이면 나는 내게 <충분히 했어 그만하면 됐어 쉬어야 해> 라고 나를 위로 하고 아픈 곳을 다독인다 혼자 있고 싶을 때에는 당당하게 혼자있고 싶다고 말하는 일, 필요 없는 부탁, 할 수 없는 일에 거절하고 나를 위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일, 그 작은 행위들이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생각하며 힘을 내는 일을 한다
때로는 조용한 장소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고 잔잔한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듣고 나를 위해 따뜻한 말 다정한 말 한 마디를 건넨다 그 사소한 행동으로 내가 내 인생을 돌아보며 눈물짓고 위로 받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각오를 하며 삶을 다시 살아가는 힘을 챙기게 된다
나를 위하는 삶은 결국 나만을 위하고 언젠가 타인을 살리는 힘이 된다 내가 비어 있으면 아무 것도 줄 수 없고 내가 채워지면 사랑과 배려는 자연스레 넘쳐나 다른 이에게로 스며든다. 안정된 마음, 나에 대한 신뢰는 비로소 다른 이의 손을 따뜻하게 잡을 수 있다.
내게 더욱 다정하자 싫은 일은 싫다고 말하자 내 마음에 귀 기우리자 실수해도 괜찮다 좀 더 나를 위하여 살자 회복을 위한 시간을 가지자 나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자 나를 위한 이 길 끝에 너를 위함이 기다리니까 그렇게 또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