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임에서 전라도 장흥에 갈 일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와 나는 짝꿍이 되어 지루한 강연을 듣는 대신 그 동네를 한 바퀴를 돌았다. 가을이라 대추며 감들이 마당이나 길거리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우리가 골목대장이나 된 듯이 휘젓고 다녔다. 동네 개들도 순해서 짖지 않았다.
오래된 집 담장 너머로 익은 감이 참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뼈대 있는 자손(마침 둘 다 김수로왕의 34대손)이라는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마침 돌로 만든 담벼락 사이에 예쁘게 잘 앉아 있는 작은 감 하나를 발견하고 감탄을 하며 그것을 둘로 나누어 맛있게 먹었다. '정말 맛있다' '진짜배기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집안에 있는 감나무 주인이 기다란 장대를 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깜짝 놀라며 우리를 혼내려고 그러나 보다 싶어 내심 맘이 졸았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뜻밖에도 장대를 선뜻 우리 앞에 내어주며
'고종시라 맛있다 나라를 말아먹은 왕이 감 맛은 알아가지고.. 쯧쯧'
하신다 우리는 피씩 웃었다
'내가 다 따주고 싶은데 나이가 들어 힘이 없다'
며 먹고 싶은 대로 실컷 따 먹고 가라고 하신다
우리는 마치 외갓집에 온 냥으로 당당하게 그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감 두어 개씩을 따 먹고는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행사장으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그 고종 시는 조선시대 26대 왕인 고종이 즐기던 감이란다.
암튼 나무에 달린 감을 따 먹어 본지는 아주 어릴 적에 집 마당에서 먹어본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정말 남다른 경험이고 즐거웠다 다시 그 평화로운 곳에 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