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열매를 만나다
편백나무가 뿜어대는 피톤치드 향만 맡아도 머리가 개운하다 아주 작은 야구공모양을 하고 있는 앙증맞은 열매는, 덜 익은 열매는 덜 익은대로 아주 익은 것은 익은 대로 예쁘다 길 건너 편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 앞에 편백나무가 열매를 잔뜩 맺었다. 이 집은 아마도 몇 해 전에 펜션과 식당을 겸하던 곳이었던 모양이다 포도존까지도 있고 올 초에만 해도 새로 공사를 할 생각인지 건축자재들을 새로 듬뿍 들여놓아 무엇일까 조금 기대를 했다
하지만 두세 달이 지나고 여름을 넘겨도 쌓인 자재는 그대로 인 채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와도 도무지 손을 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편백나무는 꽃을 피웠다가 열매를 맺고 떨어져 다시 순이 돋기를 반복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딸기 금계국 구절초 패랭이 박하 수세미 박꽃들은 저들끼리 서로를 의지해서 꽃대를 올렸다가 지금은 서리를 맞아 하나둘씩 그 모습이 사라지는 중이다
한 번은 낯선 내외를 언뜻 봤는데, 아주 젊은 사람들이었다 묵은 영수증을 가져가는 걸 보아 주인이라 짐작했다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있고 울타리는 없어도 늘 사람들이 지나는 길이라 폐가라 해도 관리는 잘 되어 있다
이 집은 담장이 없다 다만 경계라 여겨지는 축대가 있고 이 축대 밖으로 야산과 경계지역에 편백나무가 있다 편백이나 측백 향나무 등은 비슷한 향을 지닌다 아토피나 비염 천식에 좋고 숙면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편백의 효능을 생각해서 열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열매를 비닐봉지에 담아왔다
깨끗이 씻어서 반 그늘에 말리니 열매가 벌어지고 그곳에서 씨가 떨어져 나온다 씨는 다시 펜션 앞 숲으로 던지고 껍질을 일주일정도 적당히 잘 말렸다가 열매에 소금을 한 스푼 넣고 끓인 후 다시 말려서 베개 속으로 넣는다 소금을 넣고 삶아야 편백 열매가 부스러지지 않는다 아직은 말리는 중이다 말리는 중이지만 편백향이 온 집에 퍼져서 상쾌하다 곧 편백나무 열매 베개를 베고 잠을 청해 볼 작정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 만나기보다는 새로운 얼굴을 한 식물들을 더 자주 만난다 무심코 지나쳤다면 나뭇잎 아래에 그렇게 많은편백 열매를 달 줄을 어떻게 알았을까 도시와는 정말 다른 점이 많다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