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가리
살고 있는 펜션의 하얀 담장을 이고 박주가리가 한창 꽃을 피운다 박주가리는 새순을 꺾으면 하얀 액이 나온다 자칫 생각 없이 꺾은 새순 사이를 지나다니면 바지에 진액이 묻어 지우기가 어렵고 옷을 버리게 된다 초봄에 박주가리가 새순을 올리면 아랫부분은 두세장 남기고 새순 부분만 따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깨소금 참기름 젓갈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나물을 만들면 입안에서 특이한 향이 살짝 도는 오도독 씹는 맛이 정말 좋다
박주가리는 부산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은 나물인데 이곳에서 불현듯 만나서 고향 친구처럼 반가웠다 이 박주가리는 가을에 거의 다 읽은 시퍼런 열매를 따서 술을 담아 먹는다 한동안 박주가리 열매에 꽂혀 밀양이고 양산이고 들판을 찾아다닌 기억이 아련하다 술맛은 잘 모른다 술을 전혀 먹지 않고 요리할 때 살짝 들어간다 박주가리 술은 자양강장에 아주 좋다
그래서 술이 익으면 탄산에 적당히 술을 부으면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어쩌면 없어서 못 먹는다는 게 옳은 표현일까 올해는 아무 경쟁자가 없는 이 박주가리가 꽃을 많이도 올려서 열매가 익기를 기다렸다가 야무지게 술을 담글 생각이었다
그런데 펜션을 둘러싸고 하얀 철망으로 만든 담을 따라 박주가리가 피어있었는데 일어나 보니 담을 따라 정말 많이 피었던 박주가리를 누군가가 송두리째 다 잘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꽃이 예쁘게 피어서 열매가 열면 술을 담으려 했는데 할 수 없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그저 풀꽃이었으리라 그렇게 많이 무리 지어 한자리에 핀 박주가리 꽃들을 본 적도 없지만 은근히 열매를 기대하며 딸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날마다 오가며 들여다보았는데... 이런 일들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살면서 더한 경우를 하도 많이 겪다 보니 이런 일쯤이야 그냥 섭섭함으로 그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쁘게 피는 꽃들을 단박에 무식하게 잘라버린 그 사람은 대체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