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밥

by 김지숙 작가의 집

어부밥



오징어잡이 배들이 등불 켜는 낯선 시간

유영하던 바다는 가슴을 연다


길 건너 아낙이

첫새벽 바람처럼 달려와

남몰래 건넨 밥 한덩이 받아 들고

오징어잡이 뱃길을 나선다


바다 한가운데 뱃전에 기대어

밥 따로 반찬 따로 먹는

아낙의 마음 닮은 충무김밥


비우면 내어 주는 생각들이

밀물처럼 들어선 마음, 저 먼저

그 집 울타리 앞으로 달려가 꽃이 된다



통영에 새벽 낚시를 간 적이 있다 방파제에는 이른 시간, 배들이 등불을 켜고 떠난 준비를 하느라 무척 부산한 모습이었다 어느 여자가 길 건너 나무 대문을 밀치고 달려와서는 무언가를 배 위의 한 남자에게 무얼 건넸다 그리고 배는 떠나고 그 여자는 돌아서서 우리를 보고 빙긋이 웃는다

왜 그러냐고 무얼 줬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 여자 말이 앞집에 동생뻘 되는 남자가 혼자 사는데, 끼니를 못 챙길까 봐서 김밥을 말아줬다고 한다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 김밥은 충무김밥처럼 그냥 큰 김에 밥만 둘둘 말아서 김치하고 오징어무침을 넣어줬다고 했다

그러고는 내게 어디서 왔느냐 고기가 잘 잡히느냐 아침밥은 어떻게 먹느냐면서 자기 식당에 와서 해장을 하라고 은근히 자기 식당 메뉴도 자기 음식 솜씨도 이 일대에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자랑한다

마침 배도 고프고 춥고 식당으로 들어가서 메뉴판의 충무김밥을 시켰다 충무김밥의 본 고장이라 은근히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런데 새콤하게 익은 김치를 기대했는데, 담근 지 이삼일 지나 너 맛도 내 맛도 아닌 엉거주춤한 김치 맛에 오징어다리 꽁지만 서너 쪽에 어묵 무침은 양은 충분했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묵 무침을 먹으려고 충무김밥을 시키지는 않는다. 맛있는 어슷썰기 무김치나 물기 마른오징어무침을 먹기 위해 충무김밥을 먹기 때문이다

자기 식당에 해장하러 오라는 말은 뭘까 무슨 음식이 자신 있다는 걸까 습관적 호객 행위의 유혹에 홀딱 넘어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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