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풍등



흐릿한 유리창 밖

길모퉁이에 붙어 선 나무

뛰어오르다 떨다가

서성이며 팔딱이다가

나달나달 움직이며 잎깃을 세운다


두드리기도 하고

팔을 흔들기도 한다

먼저 가라고 혹은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길을 건너오는 무성음


다 보이지만 들리지 않고

다 알지만 따뜻하지는 않는 몸짓


유리창 너머 건조한 겸손의 그늘이

건너 건너로 아는, 먼 사람 되어버린


차갑고 떨떠름하고 멀기만 한

바싹 마른 풍등같은 여자가 떠 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변하기 쉽다고 했던가 아니면 애초에 다른 마음을 지니고 다른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가 그 가면을 오래 쓰지 못하고 본심을 드러내고 마는가

가면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가 혹은 영원히 벗겨지지 않는 가면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쓰고 있는 가면이 없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거리가 정해지는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기로 하고 창밖이 잘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는데 꽤 오랜 시간 연락도 없이 약속을 어긴 어떤 여자가 뒤늦게 멀리서 헐레벌떡 손짓하며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별다른 이유 없이 아무 연락도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싫어한다 누군들 이런 사람을 좋아할 리 없다 하지만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이 한 약속도 쉽게 바꾸고 지키지 않는다 어쩌면 약속의 가치가 다르거나 자신이 소중하다 여기는 것에 더 가치를 두어 마음이 일순간 변해서 일 수 있다

난 약속을 쉽게 바꾸거나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도 약속을 거의 잘 하지 않지만 내가 한 약속은 꼭 지키는 편이다


이 시는 약속에 대한 무감각한 한 여자를 두고 쓴 시는 아니다 하지만 쉽게 약속하고 건성건성 놓아버리는 텅 빈 약속이 얼마나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가 공허한 존재로 낙인 되는가를 느껴지고 약속의 무가치가 자칫 관계의 무가치로 여겨진다는 점을 알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풍등은 바람이 불고 열이 오르면 멋지게 날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면 어느 곳에 떨어져 세상 밖으로 허무하게 사라지는 존재가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한 일들로 관계는 불 꺼지고 바람이 멈춘 풍등이 되어 버리는 줄 알면 좋겠다 싶어 그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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