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인 시첩

냉이

by 김지숙 작가의 집




냉이





한겨울 추위는 희고 긴 뿌리에 모두 묻었다.

온몸이 시린 날이면 땅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냉기를 머금고 아삭한 봄이 되기까지

얼고 녹기를 되풀이하면서

시퍼렇게 피멍 든 몸뚱이가 되었다

뱀 비늘처럼 외롭고 쌉쌀한 얼굴


‘냉이’

찬 것과 이별하라는 이름



한겨울에 냉이를 캐러 간 적이 있다 굳이 냉이를 캐러 갔다기보다는 겨울 들판을 만나러 갔다 귓등을 치는 겨울 강바람을 만나러 갔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가는 낙동강 곁길에는 냉이 광대나물 질경이들이 철없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4대 강 개발로 주인들이 사라진 유채밭의 유채들도 새순을 올리고 꽃대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저들을 바라보는지 저들이 사람들을 바라보는지 도무지 알길 없는 겨울바람에도 낮게 앉아서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 해는 겨울이 유난히 추워서인지 냉이도 광대나물도 질경이도 얼었다가 녹았다가를 반복해서인지 잎들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겨울 나물은 이렇게 퍼래야 단맛이 더 난다며 이래야 겨울 나물이라면서 선호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사람들이 캐는 냉이를 보면서 나도 캐다가 문득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봄이 오기도 전에 냉이를 먹으려고 저 야단들일까 겨울과 빨리 이별하고 싶어서일까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냉이에 담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냉이는 찬 것과 이별하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을 담은 이름은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