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인 시첩

소리

by 김지숙 작가의 집





소리






소리 없이 오더니

소리없이 떠나갔다

꽃 낮달 노을 고향이 그랬다



소리를 내며 오더니

소리를 내면서 떠났다

귀뚜라미 새벽종 기차 까치가 그랬다



제 이름을 가지고 와서는

짧게 살다가 손사레치며

제 이름을 놓고 간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흔들고

수천번을 불러도 깨어나지 않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그 목소리가 있었다





한번 왔다가 한번에 사라지는 것이 삶이다 짧게 살다가 가는 사람이 있고 길게 살아가는 삶도 있다. 어떤 삶이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짧게 살다가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다

너무 일찍 떠나가서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친구의 목소리가 가끔은 생각나기도 그렇게 잘 지낸다고 하더니 온 세상을 제집처럼 구경다니며 하고 싶은 온갖 것을 다하고 다니더니 그렇게 일찍 떠날 줄은 몰랐던 사람의 소식에 덜컥 가슴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주변에서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살고 잘 놀다가 짧은 삶이지만 누릴 것 다 누리고 떠난 사람들은 보면 덜 아련한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고생고생 하다가 떠난 사람에게는 푸르게 멍이 든 연민을 느낀다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삶의 길이도 삶의 질도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는 말들을 하기도 하고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 운명론자의 말들이 와닿기도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위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세상이 더들썩하게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떠날 때도 소리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고 소리내며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어느 생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삶이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간에 숙연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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