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씹다
베란다에서 잘 키운
무농약 새싹을 수확하는 날
어느 틈엔가
달팽이가 저 먼저 시식을 했다
초록의 머리가 댕강 떨어진 무순은
허연 목덜미만 쏙쏙 내밀고 있다
달팽이 배 불리고 간 자리에
지렁이가 따라갔나?
달팽이 똥을 지렁이가 먹고
동글동글 흙덩이만 남겼다.
달팽이 지나간 자리마다 초록이 사라졌다
새싹 샐러드 한 접시에 참깨 드레싱 뿌리고
혀의 돌기에 미끄덩 유영하는 물체
불길한 예감에 멈춰 선 혀 끝에서
소근소근 새싹을 갉던 그 달팽이다
달팽이의 웃음소리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질끈, 쓰고 미끄러운 봄이다
한 때 애들 키울 때 위층에서 아이들이 너무 쿵쾅거려 말을 섞다가 위층 애들 엄마와 아예 친해져 버렸다 그 사람 다니는 교회에 친구초청일에 초대되어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친구 따라서 교회에 다니다가 서리집사 직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부터 나는 식물 집사였다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면 베란다로 나가서 식물과 눈을 맞추고 차를 마시고 저녁 잠들기 전에 또 식물들과 인사를 하고 차를 마시곤 한다 왠지 식물들이 많이 있는 베란다에 서면 맘이 편하고 하나하나에 눈을 맞추고 그만큼 잘 자라주고 꽃을 피우니 자연 예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무씨를 뿌린 새싹들이 새순을 한 번에 올려 한창 예쁜 꽃대궁이 하얗게 쏘옥 얼굴을 뽑아올려 뽐내며 자라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제법 여러개가 툭툭 잘려 나가 있었다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화분 밑에 딱 붙어 있던 달팽이가 있었다 달팽이를 떼어내고 난 흙더미에서 지렁이의 똥을 닮은 흙더미가 보이고 그 화분을 엎어보니 지렁이가 기어 다닌다
그런데 달팽이가 지나간 무순들을 잘라 잘 씻어 샐러드를 해 먹었다 그런데 잎 뒤에 붙어 있던 아주 작은 뭔가가 입에 들어 촉감이 물컹했다 뱉어보니 아주 작은 새끼 달팽이다 새순을 먹어서인지 맑은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나의 입, 나의 정원에서 내보내야 했다 아파트 베란다로 돌려보냈다 살아있으면 좋겠다 그 해 봄은 쓰고 미끄러운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