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방금 해산한 알들을 도로 위로 쏟아낸다
차바퀴에 터지는 알을 보면서
어미의 가슴은 노랗게 말라 간다
잎이 떨어지고
깨어나지 못한 알은 서릿발에 구릿빛이다
오래 품는다고 더 자라지는 않는다
때를 놓치면 어미의 가슴 안에서도
씨앗은 살아 내지 못한다
보낼 때를 알면 떠나는 것도 섭섭지 않다
가을이면 도로가에 은행이 알을 쏟아낸다 아스팔트 위로 떠나보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 알들은 그곳에서 자동차 바퀴에 바람의 발길에 터져서 온전한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고약한 냄새를 낸다
은행의 입장에서야 달리 방법이 없지만 그걸 줍는 사람도 없으니 알고도 그저 하염없이 알을 떨군다 열매야 그렇다고 쳐도 은행나무의 잎은 생김새부터 예쁘고 단풍이 들면 더 예쁘다 금빛으로 주변을 물들이고 흔한 그리움은 우르르 잎을 한 번에 다 떨구어 깊이 덮어 탐욕조차도 떠나보내는 모습은 처절할 만큼 의연해 보이기도 한다
몇 백 년이라는 오랜 세월도 말없이 제자리서 견디며 살아가는 침묵의 나무 어떤 바람에도 어떤 폭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넉넉한 자세로 하늘을 향해 때로는 푸른 희망을 때로는 노랗게 빛나는 꿈을 피우는 키우고 생사를 넘나드는 상처를 가졌다
은행목銀杏木 행자목杏子木 공손수公孫樹 압각수鴨脚樹이라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진 이 나무는 쥐라기시대부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그래서인지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온다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하고 의상대사 지팡이라고도 하는 용운사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있으면 소리 내어 울고 불에도 살아남아 찬와목이라도 한다
다전리에서 사는 의흥 예 씨義興芮氏들은 은행나무의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다음 해의 풍흉을 점친다. 잎이 한꺼번에 조용히 떨어지면 풍년이 들고, 시름시름 떨어지면 흉년이 든다고 믿는다 은행나무는 서로 마주보며 그리워 하는 애틋한 나무이다 물가에 심으면 자신의 그림자와도 인하여 알을 맺는다고도 한다
그렇게 맺은 알들을 마냥 흘려보내는 그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은행나무 아랫도리가 검은 덩어리로 뭋쳐져 있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가을이면 넘쳐나는 은행알들을 내보면서 흘린 피눈물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은행나무 어미의 마음이 되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