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전

by 김지숙 작가의 집
대성쓴풀2.png 대성쓴풀꽃



육전


어릴 적 우리 집은 종가라 제사가 자주 있었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있었고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꼭 만들어 올리는 음식이 쇠고기 육전이었다 육전은 언제나 작은 숙모가 구웠다 음식 솜씨도 좋았지만 손끝이 야무져서 전을 아주 모양새 있게 부쳐냈다

맏며느리였던 엄마는 이런저런 일로 진두지휘하느라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제대로 챙겨줄 여가도 없었고 큰상을 차려 놓으면 알아서들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먹곤 했다 식구들이 많이 모여서 누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숙모는 육전뿐 아니라 다른 튀기거나 굽는 음식을 아주 잘 만들었다 엄마의 레시피대로 다진 소고기에 후추 소금 간장 밑간 참기름 설탕 등으로 간을 하여 두고 계란물을 따로 풀어둔다

다진 쇠고기를 탁탁 손으로 치면서 쫄깃함을 살려 둥글고 납작한 모양을 만든 다음 계란물을 입혀 프라이 팬에 구우면 완성된다

소고기 밑간은 전의 맛을 좌우해서 정성 들여 잘 배합해야 한다 이 밑간은 언제나 엄마가 했다 엄마의 손을 거쳐 밑간이 완성되면 숙모 손으로 넘어가서 전을 부친다

명절 전날부터 우리 집은 늘 북적대고 시끌시끌 복잡했다 우리는 놀다가 배고프면 전을 부치는 부엌에 들리곤 했다

숙모는 육전을 부치다가 사촌이 오면 그걸 그 아이의 입에다 '호호' 불어서 얼른 넣어준다 그것은 그 아이가 태어나고 젖을 떼고 나면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작은 숙모에게 제사음식이나 명절 음식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꽤 엄한 아버지의 군기가 들어 있어 자기 전에도 낮에 입던 옷과 양말 등은 은 벗어서 차곡차곡 개어 두고는 잠에 들었다 설사 세탁물일지라도 제대로 바로 개어서 세탁할 자리에 두곤 했다 자고 일어나서도 꼭 세수하고 이 닦고 잘 개켜 둔 옷을 갈아입었다 우리에게는 제사도 지내기 전에 먼저 제사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할아버지 밥상을 버릇없이 먼저 앉아 받는 것 같아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제사 음식은 반드시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어야 한다는 철칙이 있었다 어른이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해야만 비로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꽤 까다로운 생활습관을 익히며 자라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런 나에게 작은 숙모가 결혼해서 두 살 어린 사촌 동생이 태어나면서 숙모의 행동을 보면서 내가 아는 기준에 숙모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 음식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제사를 지내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숙모는 그 아이의 입에만 그걸 넣어주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제사 지내고 먹으라 말을 하곤 했다 소고기 전은 양도 그다지 많지 않아 커다란 접시에 한 접시만 굽곤 했었다

그런데 그 커다란 접시에 가득하던 육전은 사촌이 자라면서 초등학교 중학교에 들어가도 여전히 그 행동들은 변하지 않았다 대신 제사상의 육전은 작은 접시로 바뀌었다 그 아이가 달라고 할 때마다 단 한 번도 거절하는 법이 없이 먹인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형제가 많았고 그 형제의 자식들도 많다 보니 사람들은 알아도 몰라도 그냥 지나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솔직히 그 아이가 받아먹는 바로 구운 육전은 정말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는 육전은 식어서 맛이 없었다 한두 번 먹고 나면 손이 가지 않는다 바로 구워 바로 먹는 그 맛이 제일 좋았을 것이다 나는 물론 사촌을 제하고는 우리 모두는 한 번도 그 육전을 바로 구워 받아먹어 본 적이 없었다

입이 짧았던 나는 그때는 속으로 숙모가 꽤 많이 섭섭했다 물론 제사를 지내기 전에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제사 지내고 난 뒤 뻐덕뻐덕 마른 그 식어빠진 맛없는 육전의 맛은 숙모에 대한 내 마음처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고 싶지 않았다


기억을 기억으로 덮으려고 나는 엄마의 레시피로 육전을 자주 굽는다 다진 소고기에 참기름 마늘 후추 설탕 조청 간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는 손으로 탁 탁 쳐서 쫀득한 질감은 갖게 한 다음 계란 물을 입혀 약불에 서서히 구웠다


정말 맛있다 아마도 이 맛이었을 것이다 그때 사촌의 입속으로 직행하던 육전의 그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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