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봄봄 봄봄』



겨울아




'겨울아'하고 입속으로 부르면

하얀 눈꽃이 피고

처마 끝에서 녹아내리던 눈이

고드름을 만들고

눈 위를 걷는 걸음들이 보인다



'겨울아'하고 다시 부르면

옷을 벗은 나무의 진심이 보이고

뱃속이 비어 가벼운 새들이 날고

밤하늘의 별들도 빙판에 미끄러져

자주 땅으로 떨어진다



새하얀 세상 안에서

너도 나만, 나도 너만 생각하는

겨울 숲 같은 추위 안에서

보낸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들을

붙잡기 좋은 따뜻한 창가에 앉은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덮는 함박눈이다




겨울은 두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온몸으로 온통 추위를 직면하고 살아가는 쓸쓸하고 추운 겨울과 따뜻한 방 안에서 따뜻하고 희망을 기다리는 겨울이 그것이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억새풀이 말라가고 얼음이 얼어 강이 단단해지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어려운 삶에 직면하여 힘들고 곤고한 삶을 살다 보니 억울하고 춥고 수많은 것들과 이별하며 살아온 춥고 배고프고 삭막하고 서러운 매서운 세월을 살아가기도 한다 길고 오랜 세월 날들을 인내하고 살아남으면 그런 겨울은 어느새 이별을 선언한다

삶이라는 원석을 보석으로 가공하느라고 그런 시련을 준다는 멋진 소리들을 해대지만 그 말들은 영혼이 없어 귓전에서 바로 제자리로 돌아가버린다 인생에는 원석도 보석도 없다 다만 오래 겨울을 보냈으면 오래 봄을 보낼 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만물이 총량의 법칙을 지닌 것처럼 겨울이 기니 봄도 긴 것은 그 사람의 생이 길다는 의미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봄이 없이 겨울만 보내고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길이 길이 겨울일 수도 봄일 수도 있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 삶에도 사계절이 있고 기후대가 변하고 있어 봄 가을이 짧아지기도 하고 여름 겨울이 길어지기도 하지만 길어진 여름은 시원할 수도 길어진 겨울이 따뜻할 수도 있어 계절의 온도는 변한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낸 사람에게 봄이 따뜻하면 얼마나 따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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