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시간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봄봄 봄봄』



밥 먹는 시간





마주 앉아서

밥을 먹어 본 사람과는

쉽게 헤어지지 못한다


밥 한 그릇에

듬북 담긴 정을 느낀 시간을

쉽게 잊지 못한다


한 술 한 술 따뜻함이

마음 깊은 묵묵함이

푹 익은 반찬처럼

잘 지어진 밥처럼


다정하고 낯익은 풍경이 되는

밥 먹는 시간들이

무수한 기억들을 펴고 있다



우리는 아무나와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밥을 함께 먹어 본 사람들을 쉽게 잊지 못한다 오랜 시간 밥을 먹고 지내면 식구가 된다 식구가 되기 이전에 처음 본 사람과 밥을 먹으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 사람과의 만남을 지속해야할 지 말아야할 지를 결정할 때에는 그 사람과 몇번 밥을 먹어보고 난 뒤에 결정한다 그 밥먹는 시간 동안 어땠는지를 기억하면서 계속 만나야 할지 말지를 가늠한다 잘하는 일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대체로 그렇게 하고 살아왔다

오래 만난 사람들이라고 해도 시간을 내서 밥을 먹을 경우는 드물다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밥이 대수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밥이 대수라고 말하고 싶다 함께 밥을 먹어본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 삶과의 만남과 느낌들을 되짚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식에 아주 잘 차려진 밥상을 두고 맛있게 먹었다고 말할 수 없다 혹은 산속 깊은 밥집의 따뜻한 조찬도 함께 먹고 기분 좋은 적이 있던가를 한번 되짚어본다

혹은 별 차린 것 없지만 정성이 가득하고 부지런한 손길에 대접하는 마음이 고루 갖추었다면 정말 괜찮은 식사와 좋은 만남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몇몇 사람들과 만나서 기분 좋게 밥을 먹은 경우 그 사람들과의 친분은 꽤 오래간다 아니 평생을 간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밥자리라고 하더라도 뭔가 어색하고 만만하지 않은 자리는 불편하고 다시는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만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밥을 먹고 그 밥자리가 편안했는지 혹은 상대를 배려하는지 이기적인지를 가늠하는 것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척도 하기도 했다

대부분 돌이켜 보면 그랬다 밥자리가 따뜻하고 배려심이 넘치거나 혹은 정성이 가득한 진심밥상이면 함께 한 기억과 밥자리의 기억은 일치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기억들로 다시 만나도 여전히 그날을 이어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신의 식성만을 주장하는 이기적인 밥자리나 타인의 식성을 무시한 채 내가 사는 거니 넌 그냥 내가 시키는거 먹으라는 식의 밥자리 그리고 너무 빈약하여 혼자 먹기도 무안한 밥을 함께 먹자며 내 놓은 밥자리가 있는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가 하면

같은 처지인데도 생산살을 발라 상대의 숟가락에 놓고 자신은 뼈를 발라 먹거나 귀한 옥돔 미역국을 내어 놓았는데, 낯설어서 선뜻 잘 먹지 않아도 기분 나쁜 기색을 하지 않거나 한번 가보니 정말 괜찮은 밥집이 더라면서 데리고 가서 따뜻한 밥을 먹이거나 가까이 있다고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된다고 밥시간만 되면 오라고 하는 친절한 사람 일 년 내내 고생했다며 자신도 여의치 않은데 제일 좋은 집으로 데려가서 밥을 먹이는 친구 자식 잘 가르쳐 줬다고 고맙다고 외국에서 날아와 제일 먼저 만나 맛있는 밥을 사는 사람 유명하지 않지만 따뜻한 가정식 백반집을 방금 알아냈다고 지금 바로 오라고 재촉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밥은 따뜻하고 그 따뜻 한 밥을 함께 먹었던 그 기억들로 따뜻하고 언제 다시 만나도 여전히 따뜻하다

지나고 보니 밥자리에서 어떻게 했나를 돌이켜 보니 그 관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꼭 그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니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 밥자리를 통해 느껴지는 솔직하고 진심인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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