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봄봄 봄봄』






새벽



단단한 수평선 이쪽

바다 위에서 배들이

빛나는 쪽잠을 잔다


밤새 무얼 하는지

어둠은 여전히 물속에 잠겨있고

허리가 가녀린 달빛


쓸쓸함과 슬픔 사이에서

뒤섞인 고단함을

조용히 어르다가 물끄러미

시린 새벽 밥을 먹는다




일찍 일어나 불을 켜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면 대게를 잡는지 오징어를 잡는지 짐작만 할 뿐인 수많은 배들이 불빛을 깜박이며 꼼짝 않고 서 있다 홀로 깨어 있는 것은 배의 불빛뿐만 아니다 달도 아주 섬세하게 빛나고 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움직이지 않는 그림처럼 멈춰있다

추운 날이지만 배들은 온몸으로 그 추위를 다 받아내고 바다 위에서 꿈을 이루는 몸짓들을 감싸안고 있다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고 새들보다 먼저 일어나 어둠 속에서 불빛 같은 눈을 뜨고 제 할 일을 하는 배들 뱃사람들 달 별들 수평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출보다 먼저 새벽을 맞고 있다

따뜻한 잠자리에 들어 깊은 어둠에 녹아든 사람들을 위하여 스스로 새벽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손에서 입에서 발에서 찬바람이 파고든다 파고든 바람은 얼음이 되고 얼음은 한 움큼씩 어둠을 걷어낸다

지상과 천상의 구분이 없는 시간, 그 경계에는 슬프고 외롭고 고단한 것들이 뒤엉겨서 바쁘게 경계를 무너뜨린다 새벽이면 어둠은 더 깊어지고 슬그머니 빠져나온 바다와 하늘의 경계들이 달아나면 아침은 어느새 얼굴을 비친다 그러다가 환한 하늘이 보이고 미끈한 바다가 보이고 밤사이 쪽잠을 자던 배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차가운 아침 바다가 살아난다

매거진의 이전글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