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봄봄 봄봄』
피아노
견고한 음이 영혼을 적시고
신비로운 음율이 주문을 건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게 하고
자라지 않지만 자라게 만드는
악보에 날개를 달아
파도를 타고 바람을 넘어
거대한 세상을 단숨에 흔든다
손끝으로 데려온 음들이
마디마디 가볍게 다가오는
희망과 절망을 짧게 조율한
*스타카토는
꽃잎이 되거나 노래가 된다
오래 묵은 음 하나가
길 건너편집 창문에 매달려 있다
*staccato
길을 지나가다보면 길가의 앞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녹음된 것이거나 방송용이 아닌 조금은 서툰 피아노 소리는 들으면 애가 탄다 마치 호박잎이 담장을 넘나들듯이 피아노소리가 오래동안 담장에 걸려있다 그칠 줄 모르는 소리들은 창문을 흔들며 나온다
호박잎에 싸서 먹을 수도 없는 소리들을 들을 때면 때로는 <언젠가는 그치겠지><언제쯤 명곡을 명곡처럼 치려나>라며 포기 하게 된다 그러던 피아노 소리가 최근에는 아주 멈췄다
그 집의 거실을 독차지하고 앉았던 피아노의 뚜껑이 열리지 않고 악보만 빼곡한 피아노 책들이 쌓여 먼지가 뽀얗다 궁금했다 어찌된 일인지 짐작은 가지만 말하지 않으니 더욱 물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그 피아노가 집밖으로 실려나갔다 그렇게 시끄러운 피아노 그렇게 과시하던 피아노가 말없이 집을 떠나갔다
그 집 아이들이 집을 떠나간 것 처럼 집을 떠나 멀리가서는 몇 해째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피아노에서 나오던 소리들을 저녁노을처럼 그집 거실에 걸려 있고 무거운 뚜껑은 더이상 열리지 않고 한 때 그 커다란 피아노에서 나오던 무서운 음표들만 마당의 커다란 나무가지에 걸린 채 낡아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