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봄봄봄』




우산




세상이 비를 맞는다

우산 속으로 무심히

푸른 하늘이 모여든다


물까치 동백꽃 얼레지

자동차 나무 아기 파란 풍선

마음을 붙잡은 사람들도

커다란 우산 아래로 모인다


우산이 없는 사람은 바쁘다

어서 들어오라 해도

젖은 채 멀리 달아난다


아무리 큰 우산도

모든 비를 막을 수 없고

아무리 작아도

시린 마음은 막을 수 있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제일 먼저 자신의 양손을 본다 없는 줄 알면서도 우산을 가지고 있나 싶어서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비를 맞는 동안은 길거리는 우산들로 복잡하다 어느새 우산들 틈바구니를 다니면서 빗방울은 튕겨 온몸이 젖는다 비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비를 좋아해도 몸이 젖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은 게 아닐까

새들도 비가 오면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없다 멀리 집을 떠날 즈음에 비가 오면 새들도 우산을 쓸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아예 그들은 어디론가 피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새들이 하나둘 날기 시작하면 그제야 비가 그치기 시작한다는 신호이다 가장 배고픈 새들이 가장 먼저 날기 시작할까 가장 멀리 날아온 새들이 날기 시작할까 새끼를 두고 온 어미 새들이 가는 비에도 먼저 날아 집으로 돌아간다

바쁜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서둘러 다닌다 우산이 없어도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그냥 비를 맞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메마른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오래 비를 맞으면 좀 더 빨리 새순을 내고 풍성한 봄을 맞을 수 있을까 <독감이 걸릴 걸>이라고 말하지 말자

보도블록 위에서 피고 있는 민들레 꽃은 간혹 찾아오는 비에 생명을 담보 잡고 잘못 쓴 글씨들은 그 비에 지워진다 잘못 살아온 삶의 부분들도 비에 말끔히 지워지면 좋겠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잘못을 지우려고 혹은 비에 제 잘못을 온통 가려 남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비를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작 비가 내리는 날은 비가 커튼처럼 사물을 가리니 오히려 잘못된 것들에 집중하게 되어 그런 것은 더 잘 보인다 우산 속이라고 비를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수직으로 낙하하는 비를 맞으며 온몸과 마음이 젖어 새로운 싹을 내는 날이 짧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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