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봄봄봄』




바다




되돌아가는 파도의 뒷모습에서

비늘을 떨구고 돌아선 바다를 본다


모든 것을 밀어붙일 힘을 가진 파도는

이별 속에서 다시 휘몰아쳐

백사장 나무 조각이 된다


바다에도 별이 뜬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겨울 내내 허기진 달빛 아래서

바다를 등지고 그물 손질하는

가장은 언제나 바다에 맞닿아 있다


물길을 찾은 바람은 갈수록

바다에게로 몸을 돌려 날아간다

거스르지 않는 바람이 따스하다



설 전날 부산으로 갔다가 오늘 다시 정동진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해바다를 봤다 늘 보던 바다지만 한동안 보지 않아서인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바다를 보면서 부산하던 부산에서의 일들이 하나둘씩 던지고 다시 평온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바다에 가서 바다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무꽃 바람처럼 아무런 꾸밈이 없이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린 순수한 벗이다 너무 오래된 일이고 너무 깊이 묻어둔 사람이라서 선뜻 꺼내기가 쉽지 않은 젊은 시절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친구이다

가끔씩은 세상살이를 하면서 힘들 때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을 생각했다 힘이 들고 슬퍼도 그래 살아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일찍 누리더니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 나이에 나는 아직도 그 친구가 짧은 기간에 누리던 것들을 하나도 누리지 못한 채 여전히 살아간다 그래도 아무런 후회도 없고 부러움도 없다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것이 싫다 가늘고 길게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일거다


자주 낚시를 가면 혼자서 넓은 그물을 수도 없이 늘어놓고 손질하는 늙은 가장을 본다 즐거움이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얼굴을 깊이 그물에 파묻어 손질을 하고 있다 고기를 잡으러 떠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바다로 떠나기 전 완벽한 손질만이 풍어를 기대할 수 있다 그물이 코가 빠지면 물고기들이 다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손질을 하지 않으면 만사가 허사가 된다

고기떼가 물결을 따라 움직이고 물결 위에 고깃배가 출렁이면 어부의 손길은 바쁘다 파도가 잠잠하면 도움이 되지만 물결이 치고 파도가 높아지면 어부의 한숨은 늘어난다 바다를 업을 하는 삶은 녹록하지가 않다 풍파를 겪을수록 거칠어지는 손들이 야성의 물길을 다스리며 새로운 길을 연다

가끔 방파제에 만선한 배를 대는 어부를 만나고 우리가 낚시로 고기를 잡지 못하는 때는 어부의 배로 다가가 직거래로 물고기를 사기도 한다 어쩌면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사는 재미가 있어서 자주 바다로 가는 것 같다 바람은 수평선 너머에서 오거나 때로는 바다에게 다가간다 멀리서 보면 바람이 바다에게 몸을 맡기는 모습이 보인다 사는 일도 그런 것 같다 거센 바람에 시류에 몸을 맞기고 흘러가는 편이 얼마나 수월한 지 뒤늦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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