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봄봄봄』


안경



이제 안경이 눈의 창이다

쓰지 않으면 온통 흐린 날이 되고

살아 움직이는 언어가

제각각 길을 찾아 떠나 꼬물거린다


작은 두 개의 다리로

두 눈을 잇고 두 귀를 이어

눈 위에 눈을 얹고 귀 위에 귀를 달고

멀리서 떠나온 글자들을 반겨 맞는다


세상이 세상을 당겨 주고

일상이 또렷하게 다가와

한결 바쁘게 언어들이

내 마음으로 날아드는 날은

두 눈이 안경 아래서 반짝인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근시라 안경을 쓰고 지냈고 이제는 원시가 되어 안경을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흐린 날처럼 글씨들이 두 개로 보이고 신호등이 두 개로 달이 두 개로 겹쳐 보인다 안경을 써도 조금 나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노안이라는 게 이런 걸 몰랐다 안경이 없다면 좀 더 얼굴을 찡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다가 어쩌면 바라보기를 외면할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나 안경이 없으면 불편하다 하지만 굳이 글을 보지 않을 때에는 안경을 쓰지 않는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코를 짓누르는 무게도 견디기 힘들고 구에 걸리는 부자연스러운 것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편치가 않다

하지만 안경을 쓰지 않으면 세상이 돌아가는 바를 읽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세상을 읽어주는 유튜브가 있어 귀에 폰을 꽂고 듣기도 한다 하지만 눈으로 읽은 맛과 귀로 흘려듣는 맛이 같을까 태어나서 처음 글자들을 배운 이래로 하루도 빼지 않고 읽고 바라보고 살아온 터라 읽지 않고 지내기란 쉽지 않다 이를 닦지 않은 것처럼 마음에 뭔가 불편하다

그래서 안경은 언제나 필수품이 되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에도 작은 글씨를 읽을 때에도 안경을 쓴다 더러워진 알을 닦고 호호 입김을 불어 다시 닦으면서 안경의 수고로움을 기억한다 대신 읽어주느라 보여주느라 얼마나 힘이 들까 모든 완충작용을 하는 존재가 그렇듯이 안경도 얼마나 애를 쓸까 흐릿한 시야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안경을 발명한 사람에게 정말 감사하다 요즘처럼 한두 시간 글을 읽고 나면 뒤어야 하는 상황에서 안경이 없었다면 그 조차도 쉽지 않았을 터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아침해를 저녁달을 보기 위해 안경을 쓰지는 않는다 어지간한 근시안이 아니고서는 노안으로 숲길을 걷기 위해 안경을 쓰지는 않는다 결국 사람이 만든 것들을 보기 위해 사람이 만든 안경을 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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