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봄봄봄』
이런 날 전화를 한다
은행잎이 물들었다고
소나무에 쌓인 눈이 다시 내린다고
앞바다가 푸르다고 전화를 한다
그래 얼마나 예쁘냐고
얼마나 흔들리냐고
얼마나 푸르냐고 대답을 한다
목소리가 오고 가는 동안
반가움도 덩달아 오고 간다
푸르게 출렁이며 흔들리며
전화줄 타고 홀로 멀고 먼 길을
단숨에 달려온다
요즘이야 전화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이 전화보다는 핸드폰을 사용한다 핸드폰 역시 전화의 한 종류이기에 전화가 갖는 다양한 장점을 갖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은행잎이 물들었다고 소나무에 쌓인 누이 다시 눈으로 내린다고 전화를 하지 않는다 주가가 올랐을까 어디 맛집은 어떠냐 어제 산 옷이 어떻다 어디에서 산 사과가 맛있다고 하는 일상들을 자잘하게 물어온다
사는 것도 시기가 있듯 대화도 나이가 드나 보다 같은 친구라도 오랜 세월 대화를 해 온 사이라도 대화의 주제가 나이가 들수록 달라진다 젊은 시절의 뜬금없는 대화는 없다 자연에 관한 이야기도 눈이 많이 내려 꼼짝할 수 없고 비가 많이 내려 운전이 힘들다는 푸념으로 변한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만나러 가고 아무리 눈이 와도 눈싸움을 하던 시절은 다 시기가 있나 보다 모든 것이 다 제 때가 있나 보다 신나고 즐겁던 일도 어떤 시기가 지나면 시들하고 시시하게 된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시시하고 시들하던 때에 하던 일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