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도마 셋
'도마'는 도막에서 왔다
칼 '도刀'에서
끝까지 떨어뜨린다는 '막'
잘게 부술 '마'에서도 왔다
세상의 먹거리를 홀로 떠안고
수많은 칼질을 막으며 기절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했다
사도 '도마Θωμᾶς'는 인도 동쪽
태양신을 섬기는 자들의 손에서
불가마에 던져지고 창에 찔려 죽었다
체조 종목 '도마跳馬'는
도움닫기를 통해 구름판을 이용하여
양손을 짚고 하늘을 오르며 비행하고
다시 착지한다
도마는 같은 말이지만
제각각 다른 의미로 자란다
일생을 살면서 남녀를 막론하고 도마 위에서 요리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마와 같은 존재가 되었던 적이 있을까 금수저로 태어나서 금수저로 죽을 때까지 조차도 자신이 단 한 번도 도마가 되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삶 자체가 수많은 생존경쟁에서 시작되었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DNA를 받아 태어났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 단 한 번도 내게는 어떤 시련도 없었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면 왕손이거나 도인이거나 수도승이거나 혹은 아예 모지리가 아닐까 왕손조차도 수많은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방법을 택한 자가 아닐까 이렇게 넓고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다시 생각의 범주를 축소하여 평범한 우린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을 받는다는 점을 도마와 비교해 보게 된다
전형적인 의미로 도마는 예전에는 나무를 주로 사용해서 만들었다 사용하는 과정에서 붉은 핏물이 들거나 혹은 수많은 칼질에 깎여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더이상 사용할 수 없는 도마가 푸줏간 앞에 자주 버려져 있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플라스틱이나 실리콘 유리 등을 사용하여 옛날만큼 도마가 난도질당하는 경우는 잘 없다 아무래도 강화유리도마가 생겨나 아무리 칼질을 해도 흠집이 나지 않기도 한다
도마가 변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변하나 보다 강화유리도마처럼 강심장인 사람도 있고 실리콘 도마처럼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사람도 있고 플라스틱스처럼 적당히 유들유들한 사람도 있고 나무도마처럼 여전히 뻣뻣한 사람도 있다 선비의 도를 찾거나 상놈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에야 '도' 아니면 '모'로 사람을 규정하고 거기에다 잣대를 두고 평가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요즘에야 도마의 종류보다 더 많은 다양한 인간유형이 있다
도마를 쓰면서 하나만을 쓰지 않는다 고기 자를 때 채소를 다듬을 때 생선을 손질할 때 각각 다른 도마를 쓴다 요즘 사람들의 마음씀씀이도 그렇지 않을까 이사람 저 사람 앞앞에 마음을 다르게 쓰는 것이 요즘 사람들이 아닐까 진심이 하나가 아닌건지 연기를 잘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 개의 도마를 사용하는 만큼 여러 마음 속에 또다른 마음을 두고 필요할 때마다 유효적절하게 꺼내 쓰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