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보다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비를 보다



창밖의 비를 보려고

허리를 낮춘다


땅에 떨어지는 비는

흩날려서 손에 잡힌다

그늘진 곳에도 비는 내린다

비 내리는 날은 온통

그늘이기 때문이다


비 맞지 않으려고

고개 숙여 달리는 사람

머리 위에서 빗방울은

가벼운 음표처럼 뛰어다닌다


느닷없이 내리는 비를 보면

마술에 걸린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 앞에 맨 몸으로 부딪치는

상처투성이 비의 몸뚱이를 본다

쓸쓸히 사라지는 비의 말이 들린다



겨울비는 소리 없이 내린다 여름비나 가을비처럼 요란하지 않아 좋다 비일까 눈일까 애매한 상황에서도 조용히 내려서는 그제야 비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겨울비가 내리는 날은 사방이 조용하고 또 요란 곳에 이르면 사아방이 시끄럽기도 하다

비 내리는 베란다에 앉아 차를 마시면 왠지 세상의 조용함을 모두 끌어안은 듯 조용하다 거미줄에 걸린 빗방울들도 천천히 내리는 비에 속절없이 끊어진다 비 오는 날은 토닥토닥 어쩐 날은 주룩주룩 비가 하는 말들을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비가 외로운지 슬픈지 우는지 낯선지 익숙한지 친구에게 하는 말처럼 비의 말이 들린다

때로는 먼 길을 달려왔다고 힘들다고 하고 때로는 자다가 일어나서 황급히 오느라 아무것도 챙겨 오지 못했다고 하고 어떤 날은 불빛을 동반하고 거차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양한 것처럼 비 내리는 모습도 다양하다 구슬비 이슬비 가랑비 안개비 는개 억수비 장대비 작달비 봄비 가을비 겨울비 밤비 칠석물 낮비 밤비 여우비 도둑비 보슬비 소나기 궂은비 큰비 장맛비 단비 약비 찬비 웃비 목비 모종비 비 내리는 종류나 모양에 따라 이름 지어진 비는 그 소리도 정말 다르다 비 내리는 소리가 비가 하는 말이라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 빗소리도 바람소리처럼 정말 다르다 누가 발명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번 쯤 귀기우려서 비가 하는 말을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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