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어서 와 봄
자꾸 비가 내리면 봄이 가깝다
산천이 젖을수록
목마른 나무들이 살이 오르고
마른 풀잎 사이에서
다시 살아난 꽃들이 두팔을 들고
골목 끝집에서 활짝 핀 마음들도
어서 와 어서 와 봄
그때 비로소 봄이 가까운 이유를
알았다
봄이 가까웠는지 요즘은 자주 비가 내린다 햇빛이 쨍한 날도 좋지만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겨울 끝자락 비도 반갑다 베란다 상자에 키우는 명이나물이 새순을 제법 크게 올렸다 방울 토마토도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두 세그루가 다시 살아나서 꽃을 피운다 그래서인지 봄이 가까운 느낌이 확 다가온다
절기로야 입춘이 지났고 마음은 벌써 봄이지만 날씨는 아직도 추워서 아래 위로 솜옷을 벗지 못한다 꽃이 피어서 봄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하면 봄이 온다는 것을 여기 살면서 알게 된다 죽은 게 아닐까 걱정하던 마음이 다 사라지고 작은 새순을 보면서 살아낸 안도감에 동질성을 느끼면서 봄을 재촉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봄을 사랑한다 인생의 봄날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아온 만큼 이제는 봄날만을 누리고 싶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다 누리고 살아야 할 모든 감정과 물질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다 찾아 먹지 못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일찍 다누리고 일찍 사라지는 사람도 있고 고목나무에 꽃이 피듯 늙그막에 다 누리는 사람도 있고 평생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누리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다 스스로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생각하면 좀 더 희망적이거나 좀 더 노력하거나 좀 더 분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끝이 좋으면 다좋다'는 말도 있고 '초년 고생 젊어서 고생은 돈주고도 한다'는 옛말이 정말 옛말만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 뜻들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어찍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될까 싶지만 자세히 보면 양지도 음지도 조금씩 자리를 옮기면서 변하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에서 온 말인 것 같다
봄이 완연하여 목련이 피고 질 즈음이면 느닷없이 비바람이 불어 목련 꽃잎이 다 떨어지는 처연한 광경을 보면서 봄바람은 잔인하다는 것을 느낀 적도 있다 봄바람은 자신의 할일을 충실히 한 것 뿐이고 목련은 봉우리를 피울 때 충분하고도 남은 설렘을 가져다 준 만큼 자신의 할일은 다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봄은 느닷없이 오는 것이 아니다 비를 내리고 또 비를 내리면서 끊임없이 '어서 갈게' '어서 갈게' 기다리라면서 나무에게 꽃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무들은 그 신호들을 온몸으로 새기며 점점 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린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봄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본능적으로. 사람도 자신의 봄날이 가까이 와 있다거나 봄날에 들어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