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비
비 내리는 날은
물방울의 연주를 듣는다
낮은 도에서 높은 도까지
16분 음표 8분 음표
4분 음표 2분 음표 온음표 쉼표까지
가스펠송도 들린다
비 오는 날마다
빗방울이 연주를 한다
적당히 두드리고
적당히 길게 쉬면서
뒤집어엎기도 하는
빗길 연주는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리고
질척거리는 밤을 위안하는
신기루를 그리는
황홀한 노래기 된다
비가 내린다 빗길을 걸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비가 내려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린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한 방울 한 방울이 음악이 되어 창밖 세상이 연주를 한다 낮은 음표들이 주 음률이고 간혹 트럼펫 소리 같은 끼어드는 음들도 가스펠송 같은 심경을 울리는 소리도 있다 자연의 소리가 이렇게 다양하고 평화로운 줄 몰랐다 사방으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이렇게 선명하게 맞대면하고 들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니..
봄비를 맞고 있는 사물들이 내는 소리가 그들이 비를 맞으며 몸들을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어디선가 듣던 소리 같은데 하지만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소리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난 시간을 송두리재 돌아보아도 이처럼 한적한 곳에서 한가로이 빗소리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빗소리를 들을 만큼의 여유도 없었던 삶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남은 걸까 가만히 비를 만지려고 창밖으로 손을 내민다 아직은 찬기운이 넘쳐 오래 만지지는 못하지만 내민 손을 반기듯 빗방울이 손을 간지럽힌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어느 노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사연이 그다지 많지 않아 눈비를 싫어하는 건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에든 닿고 싶은 곳에 가닿는 빗방울을 보면서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를 생각하곤 한다 도르르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생각한다
빗방울이 세찰수록 빗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마치 소리들이 잔치를 하는 것 같다 다양한 소리들이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반복하면서 음률을 만들어낸다 빗소리가 커질수록 더 잘 들리는 빗소리가 커튼이 되어 다른 여러 기억들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