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연필



줄어드는 키를 보면서

줄어드는 생을 느낀다


뼈를 깎는 고통을

너도 느끼냐

살을 에는 아픔을

너도 아느냐 물어도

도무지 답이 없는 너에게


지우개로 지울 수 있지만

지워지지 않고 흔적이 남는

생도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늘 쓰는 연필만 쓰게 된다 몇번을 깍다보면 어느새 키가 작아져서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언젠가 가르치던 아이 중 몽땅 연필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내가 모아둔 몽땅 연필을 보며 내게 말했다 자신은 몽땅 연필로 글을 쓰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모아놓은 몽땅연필이 아주 많은데 몇개 가져가도 되냐고 말했다 쓰지 않으니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했다 몽땅연필만 주기 그래서 새연필과 몽땅연필을 줬다 아이는 새연필은 필요없다면서 기어이 몽땅 연필만 가져간다

아이의 엄마는 그 아이가 가져온 몽땅연필에 대해 아예 포기를 하고 사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더라고 푸념한 적도 있었다 <좋은 기억이 있나봐요 어쩌겠어요 나쁜 일도 아니고 자기가 좋다는데> 라고 말끝을 흐렸다

집안 형편이 나쁜 것도 아닌데 의아했지만 자기는 몽땅연필이 너무 귀엽고 쓸 때에도 손에 딱 맞고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손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작은 아이였다 몽땅연필도 그 아이 손에 드니 그다지 작은 줄을 모르겠다 몽땅연필로 글을 쓰는 그아이는 지금쯤 키도 훌쩍 자라서 제법 청연티를 낼 때가 된 것 같다 무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남다른 생각으로 살아갈 것은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크기의 몽땅 연필이 하나둘 모이면 그 아이의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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