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겨울
놓고 간 사연이 눈으로 쌓인 날은
찬바람이 분다
차가운 하늘에서 별들도 미끄러져
가슴에 내린다
눈산에서 길을 잃는 일은 다반사
흩날리는 눈에 흔들리지 않고
굿굿이 걸으면 꽃길이 된다
눈 내리는 날
산은 입이 더 무거워지고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나무들은 막무가내로 기댄다
손발이 시린 날은 문득
따뜻한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찾아든
겨울 편지가 되고 싶다
허공에 진눈깨비가 날리고 함박눈이 내리고 온통 하얀색이 뒤범벅된 곳에서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끔씩 차도가 끊어지고 택배가 끊어지고 온통 얼어버린 세상에서 홀로 청청 살아남은 겨울나무들을 보면서 < 대단하다 대단하다 너희 정말 대단하다>를 연발하며 겨울 숲을 바라본다
깨끗한 눈이 아무리 쌓여도 이제는 눈사람을 만들지는 않는다 눈길을 쓸어 미끄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길을 내는 일을 하고는 종일 몸살을 하기도 한다 흰 눈을 밟으며 걷고 싶은 마음도 조금씩 사라진다 행여 미끄러져서 다치면 얼마나 힘들까 염려되어 눈길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다
겨울 하늘은 흐려야 제맛이지만 요즘은 자주 흐려서 해를 보기가 힘들었다 사람이 살면서 열두 번도 더 변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겨울을 향한 내 마음을 보면서 느낀다 겨울 눈을 기다리고 눈이 쌓인 곳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정작 눈으로 둘러싸인 고장에 살다 보니 눈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때로는 생활의 불편함을 가져다준다는 느낌에 눈을 생각하는 마음이 바뀌어간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를 하게 되나 보다 내 마음과 같지 않은 그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다른 세상을 보고 자라고 살아온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과 같지 않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같다고 여기는 마음이 오히려 아둔하다 여겨질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판단하고 말하고 기억하고 단죄한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게 만드는 아집이 강한 사람부터 그럴 수 있다는 이해심 깊은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겨울이 되어봐야 추운 줄을 알듯이 없이 살아봐야 귀한 줄을 알고 없어봐야 진짜 사람을 만날 기회를 갖는다
인생의 겨울을 호되게 보내고 나면 면역력이 생기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한결 넓어진다 그런 겨울을 보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차이는 겪어보면 안다 고수의 눈에는 고수가 보이고 하수의 눈에는 하수가 보이듯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이 겪은 삶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한다 그리고 그게 옳다고 굳게 믿는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 자기 잣대만 옳다고 굳게 믿는 강직한 사람이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