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구멍
오래 묵은 나무
아랫도리에 난 구멍을 본다
바람 숭숭 떠도는 그 곳에
소리 소문없이 들이닥쳐
깊숙이 자리잡은 어린 민들레
아무곳에서도 잘 자란다지만
넓고 넓은 땅 다 놔두고
하필 겨우 목숨 연명하는
나무 아랫도리를 집 삼아
베시시 자라나는 철없음
무심코 지나는 숲길입구에서 민들레 밭을 만났다 사방천지가 민들레 꽃이 피고지고 씨앗이 흩날리는 곳이라 어디에서 씨앗이 다시 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여름폭우로 반쯤 쓰러지고 가지가 찢어진 나무의 아랫도리에 구멍이 나있는 곳에 민들레 새순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오래 묵은 나무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데 그곳에다 자리를 잡고 움을 틔우고 싹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꽤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씨앗이고 나무이다보니 자연의 순리에 맡겨진 대로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넓고 넓은 땅 다 놔두고 하필 그곳에 자리한 민들레도 그렇거니와 그런 민들레를 받아들여 키우는 나무의 마음조차도 한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자연의 힘을 이해할 수 없는 곳에서 뜬금없이 읽게 된다